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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원


돈을 벌게 되면서 아들녀석은 늘 엄마에게 으시대기 시작했다.

알바비 나오는데 치킨 쏘아 드리죠.. 하고 말이다.. 그건 대학 입학시즌부터 시작된 아들녀석의 거들먹거림이다.

돈을 버니까 엄마에게 한 턱 내겠다는 과시와... 저도 이제 그 정도쯤은 낼 경제력이 생겼다는 자랑질일 것이다.


나야 뭐.. 언제나 좋지.. 하고 아들녀석의 코묻은 알바비로 지불되는 치킨을 넙죽넙죽 언제나 잘 받아 먹었다.

그때 치킨에 동반되는 것은.. 맥주... 맥주는 엄마가 사주시죠.. 하고 거래도 할 줄 안다.. 그야 뭐.. 그쯤이야 하고 나는 흔쾌히 그 제안을 접수해준다.

그렇게 아들녀석 알바비로 나오는 치킨을 받아먹은지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젠 직딩 아들의 월급날...우리의 모자지간 이벤트는

그날 뭐 먹을까로 시작된다..


이제 2년차로 접어드니 매달 밥 먹는 것도 시들해졌고 그다지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지난달.. 동네 수제맥줏집을 한 곳 개발했다.그리하여

그날은 수제맥주를 마셨다.


그 자리에서 가방에서 뭘 꺼낸다.


 

 


 모냐?


 텀블러이다... 회사로고가 박힌 스벅 텀블러...

 연수원에서 1등한 선배가 주었다고 한다..

 여친 있으면 여친 줄 텐데 여친 없어서 엄마에게 상납한다는 멘트를 잊지 않는다..


 흠흠... 그러게 말이다.

 네 여친은 어디 숨어 있다가 아직 안나타나서 이런 텀블러를 나에게 빼앗기는 거니?

 하고 인사성멘트를 날리고 기쁘게 받았다..



 아들이 유럽 여행중 반했다는 코젤 다크.. 시나몬이 들어간 생맥주를 주문해서 마시고

 고르곤 졸라와 치킨을 시켜 안주로 먹었지만.. 믿거나 말거나 치킨은 테이크아웃해 와서 밤늦게 공부하고 온 둘째의 간식이 되었다.

 

 두두두.... 둥..

 지난주... 또 월급날...

 뭐 먹냐? 떠들다가 동네 꼬치구이집에 갔다.

 꼬치를 시키고 맥주를 마시며 아들과 모자지간 왕수다...



 

 

 

그렇게 보내고 다음날... 모처럼 동네 공원에 산책 나갔다.

거기 좀 고급스런 차이니즈 레스토랑이 있다.

가난한 엄마의 사정에 맞게 우린 거길 가면 코스요리 대신 늘 자장면과 짬뽕을 시켜 먹었다.


그날도... 아들녀석이 전날 제가 엄마에게 술을 쏘았으니 점심은 엄마가 사주셔야 한다고 떼를 썼다.

흠.. 넌 늘... 내가 자장면 먹을 때 마파덮밥 먹더라.. 그거 안돼.. 엄마 요즘 백수거든... 6500원 자장면 범위에서 먹어.. 하고 얘기 했더니...


음.. 제가 차액 3500원을 드리죠.. 그거 드리고 저는 마파덮밥을 먹겠어요.. 하고 주장한다...



외모가 어디 한 군데도 나를 닮은 구석 없어서 태어났을 때... 기분 나빴었다.

내 배 아파 낳았는데 나를 안닮아서 기분 나빴는데...


그날 아들녀석의 태도를 보며... 내 아들이 확실 한 것을 알았다..


나같아도 그처럼 했을 것 같아서...


차액 3500원을 지불하고라도 먹고 싶은 것을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고집...

그리고.. 3500원을 지불할 고집...


그래... 알았어.. 하고 우리는 그날 점심에 마파덮밥과 자장면을 시켜서 먹었다..


그 사이 아들녀석 친구가 그리로 오기로 했다고 한다.

아들과 통화하다가 친구가 그리로 온다하니 거절한 것을 내가 오라고 하라고 말했다.. 엄마는 집에 가면 되니까 친구 오라해서 놀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뭐.. 20대 아들과 노는 거 그리 재미 없거든...ㅋㅋ


점심을 먹고 물론 내 카드로 계산했다.

말이 그렇지 아들에게 차액 3500원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점심 먹고 나니 아들이 커피 드시라고 커피판매하는 곳으로 데려갔다. 엄마만 드시라고 한다.

자신은 곧 친구가 오니까 같이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난 집에 가서 마시면 되지 그럴 거 없다고 하고 집으로 와서 집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들어온 아들녀석이 내 눈 앞에 불쑥 내민다..


차액 3500원...


뭐냐?


아하.. 아까 낮에 엄마 커피 안사준 거 미안해서?


그래서 예상에 없는 수입 3500원이 생겼다는 자랑질...ㅎㅎ


사는게 거기서 거기고 별반 다르지않지만..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에서 나는 기쁨과 예외성을 찾는다.

그리고 여기 써서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은 그다지 재미없는 일상에 작은 파동 같은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나눔으로 웃고 미소지을 수 있다면 하는 작은 바람...


함께 사는 세상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