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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가게

제비꽃1014 2007. 11. 25. 01:22

 

지하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면

입구 모퉁이에 파리바게트가 있다.

 

그 옆에 약국이 있고 그 옆에

예전 꽃가게가 토스트가게가 되었고

바로 옆에 튀김가게가 있다.

 

바삭한 맛이 깔끔해서 평소에 튀김을 잘 먹지 않는 나도

늦게 들어오며 오늘은 그 가게에서 튀김을 사서 아이들 간식으로 들고 들어왔다.

잠자리에 들어서려는 아이들을 깨워 튀김을 먹였다.

 

튀김가게 상호는 <섹시한 떡볶이>이다.

그 이전에도 떡볶이를 팔았으나 주인이 바뀌며 튀김을 새로 추가해서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2년 전쯤인가 겨울

5000원짜리 치킨집이 유행처럼 번질 때

지금의 그 가게는 산타치킨집이었다.

긴머리를 묶은 아주 잘생긴 남자가 치킨을 튀기면

피부가 투명한 그의 아내가 옆에서 포장을 해주곤 했다.

 

그때 나는 선배가 일하던 모대기업 사보에 한달에 한번 글을 쓰고 원고료를 받았는데

원고료가 통장으로 들어오면 기념으로 BBQ치킨을 사서 아이들과 같이 먹으며 기분을 내곤 했는데

5000원짜리 산타치킨의 등장으로 비싼 BBQ대신 산타치킨을 더 자주 사다 먹었다.

 

닭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고 5000원 가격에 비해 고급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소감을 말했더니 그 꽁지머리의 남자가 마늘소스에 재웠다가 튀기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었다.

 

늘 늦은 밤에 거기서 간식거리를 사다 먹이니 얼굴을 익히고는 내가 지나갈 때면 눈인사도 해주고

오늘은 늦으셨네요 하고 내 피로를 같이 염려해주던 그들부부와 정이 아주 많이 들었다.

 

어느날부터 남편이 보이지 않고 아내가 치킨을 튀기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장사가 잘 안되어 남편은 다른 곳에 아르바이트를 다닌다고 했다.

그렇게 남자가 드문드문 보이다가 몇달이 지나자 그 가게는 내부수리를 하고는

떡볶이집으로 변신했다.

 

수더분한 인상의 얌전한 아주머니가 맛있는 떡볶이를 팔아서 나는 가끔씩 거기서 떡볶이를 샀다.

그렇게 그 아주머니와도 얼굴이 익어갈 무렵

그 가게엔 또 변화가 생겼다.

닭꼬치를 굽기 시작했다..

우리아이들이 좋아하는 닭꼬치를 또 가끔 그 가게에서 사기도 했다.

그러나 닭꼬치는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아쩌씨가 따로 구웠다.

 

어느날부터인가 떡볶이를 하시던 아주머니가 안보이고 닭꼬치굽는 아저씨가 떡볶이도 함께 팔았다.

두분이 부부였나? 아니면 인수인계를 위해 아저씨에게 장사요령을 가르쳐주고 아주머니는 그만 두신 것일까? 궁금했지만 낯모르는 어저씨에게 말을 걸 정도로 궁금하지는 않아서 내 궁금증은 잠재워두었다.

 

가게주인은 인생 다 산 표정을 하고 분식과 닭꼬치를 팔았다.

손님이 가도 눈도 안맞추고 물건만 주었다. 도대체 웃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눈을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늘 한두올 늘어뜨리고 땀을 흘렸다.

 

혼자 짐작하기를...

그래 저 나이에 여기서 분식을 파는 일이 즐겁지는 않겠지..

그러나 어쩌겠어? 이왕 하기로 한 일이면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더라도

즐거운 척 웃으며 장사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 표정을 보면 그 간식이 먹고싶은 생각이 들겠어?

머리좀 짧게 자르고 좀 웃으면 좋을 텐데

저 표정으로 죽지못해 하는 듯이 장사를 하면 장사 잘 안될 텐데...

 

그래도 내 기우와 달리 그 아저씨는 꽤 오랜 기간 장사를 했다.

 

하지만 사람눈은 다 비슷한데 다른 사람이라고 그 아저씨를 보며 즐거워했을 리가 있었겠는가?

우리 동네 사는 다른 분도 나처럼 그분의 표정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노라고 말씀하셨다.

 

아니나다를까? 그 가게는 <섹시한 떡볶이>로 상호를 바꾸고 새 주인이 들어왔다.

 

깔끔한 젊은 여자와 단정한 젊은 남자가 튀김을 하고 떡볶이를 판다.

그들은 친절하고 밝게 웃으며 장사를 한다.

그래서 길가 초입이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돈만으로 해결안되는 것들...

 

긍정적인 생각과

밝은 미소가 아닐까?

 

얼굴을 마주 보며 덤으로 얻어가는 것도

밝은 미소에 묻어나는 친절함일 것이다.

 

세번째로 바뀐 <섹시한 떡볶이> 집이 번창하기를

그 집의 밝은 미소가 우리동네 사람들에게도 번져

튀김만큼이나 고소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