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2008 03 24
지금은 새벽 1시..
사과를 껍질째 와삭와삭 배어물며 컴퓨터의 화면을 열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큰아들놈을 생각하며 괘씸한 생각이 든다.
아들놈은 기독교학교에 들어갔는데 오늘부터 3일간 신앙수련회에 갔다.
잘 도착했다는 안부인사 한 자 없는 아들녀석에게 집에 돌아와 문자를 보내 잘자라는 인사를 전했는데
아무 인사도 없다.
아침일찍부터 학교에 가서 긴장된 생활을 하는 선휘는 내가 집에 돌아오면 늘 선잠이 막 든 상태이다.
이모와 함께 자고 있는 선휘를 업고 돌아오면 늦은 밤 서글퍼지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 봐주느라 정작 내 아이는 방치되어 있다는 자괴감에 마음이 아파오기도 한다.
그새 나는 큰아이를 친구삼아 살아왔는가 보다.
선재가 없으니 그녀석의 빈자리가 느껴지니 내가 늙어가고 있는 탓일까?
학원에서 돌아오면 그날의 학교일을 조잘조잘 내 뒤를 따라다니며 떠들어대던 아들놈과 늦은 간식도 먹고 그날의 수다도 떨곤 했었는데
녀석이 없으니 이미 잠든 선휘와 한 마디도 못하고 나는 입을 다물어버리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다가
일년 전 집에 굴러다니던 포도로 담근 술을 마셨다.
씨를 빼먹는 게 귀찮아서 포도를 잘 먹지 않는다. 씨가 거의 없는 거봉을 조금 먹는 것으로 늦여름을 보내곤 하는데 직년 여름엔
포도를 두박스씩이나 연달아 사먹었다. 엄마가 게으르다 보니 잘 안사다먹였는데 어쩌다 먹은 포도가 맛있어서 연이어 두박스를 사다 먹다가 나중엔 시들해져서 말라가는 포도를 페트병에 넣어 포도주를 담갔었다.
집에 선물받은 와인 한 병이 있긴 했지만 그걸 마시기엔 오늘은 주말도 아닌 월요일..
적당치 않다고 여겼다.
담가놓은 포도주를 따라마시니... 그리 달지 않다.. 드라이와인과 맛이 비슷하다.
어젠 부활절이었다.
올해는 부활절이 이른 편이라 칸타타 연습에 분주한 한달이었다.
지휘자가 큰아들 다니는 학교의 음악선생님이다.
그래서인지 행사가 있을 때면 그 학교의 현악반 학생들이 대거 동원되어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주기도 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는 음악선생님은 조수미와 한두해 선후배간이라고 했던가? 동기라고 했던가? 잘모르겠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현악기와 합창을 함께 어우러지게 하는 그의 솜씨는 감탄을 느끼게 했다.
아마추어이지만 그는 그일을 즐겁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칸타타 연습을 하는 내내 나는 행복했다.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을 읽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무엇을 꿈꿀까?
아이들의 장래와
좀더 넉넉하고 여유있는 경제적 여유
나나 가족 이외의 남을 위해 나누어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
주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소망을 품는 것...
잠든 선휘가 잠꼬대를 한다.
선재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
이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