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저녁습기

제비꽃1014 2008. 5. 8. 01:19

 

언니와 저녁에 우이천변을 오늘도 걸었다.

비가 와서 땅이 젖어있었다.

그리고 쌀쌀한 한기도 느껴졌다.

 

그리 향기롭지 못한 하천옆이라 그런지

오늘은 오물의 악취가 느껴졌다.

빗물이 불어서 냄새가 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빛을 따라 걷는다.

 

오늘은 비때문인지 비가 그쳤어도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강북구와 도봉구 노원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우이천을 한 시간 반 정도 걷는다.

 

비가 와서일까?

뿌우연 회색빛 습기가

저녁 불빛에 안개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났다.

그렇다..

대학 졸업반 때 속리산과 단양팔경으로 졸업여행을 갔었다.

 

그 여행의 기억 중에

가장 정서적으로 좋았던 것이

속리산유스호스텔에 도착하여 여정을 풀고

밤길산책을 하던 기억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비가 내려

땅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뿌우연 습기가 안개처럼 깔린

속리산주변을 걸었다.

다음날 속리산 문장대에 등산을 하긴 했지만

그날밤은 그저 가벼운 산책이었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그길이 아주 오래도록

내 가슴 속에 새겨져 있다..

 

단체여행이 아니면 아버지는 여행을 한번도 보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게 되면

아버지허락을 못받아 번번이 놓치곤 했는데

졸업여행은 학과에서 단체로 가는 여행이라 보내주셨었다.

 

여름방학엔 학술답사여행도 있었는데

나는 졸업반 때를 제외하곤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답사도 한번도 못다녀온 것 같다..

 

학회에서 하는 그룹스터디만 겨우 참여하고

그걸 준비하느라 논문과 텍스트를 읽어대던 기억만 있다..

 

교직과정에 있던 교육실습을 어느 중학교에서 마치고

그 여행을 떠났지 싶다..

 

불투명한 미래와 앞으로 던져질 삶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밤을 봄밤을 느끼기에 충분히

감상에 젖을 수 있을 만큼 나는 생활인에 찌들지 않은

맑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나 기억된다.

 

6월항쟁이 있기 한달 전

5월

아마 지금쯤 되었을 것이다..

 

투사도 아니고 투사적 기질을 지닌 것도 아니었지만

명동가투에 참여하여

스크랩을 짜고 거리를 뛰어다녔고

잡히지 않으려고 어느 가게에 숨어들어가 숨어있다

가까스로 집에 들어간 그해...

 

그때 나는 앞으로 펼쳐질 삶에 무슨 거창한 꿈을 꾸었던 것일까?

토플책과 영어단어

시사상식

타임지를 들여다보며

한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기 위해

골머리를 짜던 기간이기도 했다.

 

그 봄밤

그 뿌우연 안개같은 습기가

오늘은 이슬방울처럼 아롱져

내 눈가에 맺혀온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한 살 연하의 남자친구가

군대에 간 그 해

 키가 훤칠하니 큰 멋진 친구였는데 장가가서 애낳고 잘 사고 있겠지?

가끔 궁금하다..

해바라기의 <사랑의 시>를 나즈막히 들려주던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그 친구를 그 이후로 볼 수 없어진 것처럼

푸르른 내 20대의 청춘도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음을...

 

이제야

추억하며

내 눈에 이슬이 맺혀온다...

 

그리고... 

5월...

 

오늘은

나랑 같은 방을 쓰던 아이들아빠의

생일이었다..

 

그의 두 아들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아버지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