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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아내가 결혼했다/유랑가족
제비꽃1014
2008. 6. 26. 00:24
소설은 소수의 이야기이다. 그럴 듯한 개연성을 지닌 허구...지극히 교과서적인 암기지식이었지.
박현욱의<아내가 결혼했다>
신문의 광고란을 장식할 정도로 논란을 일으켰던 소설이었으나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았지만 기억의 한 페이지에 늘 차지하고 있었다.
축구이야기와 결혼의 다양한 형태 그리고 아내 한명과 두명의 남편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몇년 전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를 읽으며 결혼의 불모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었다.
더이상 신성하거나 순결하지 않은 결혼에 대해
역설적으로 결혼하는 것이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웅변함으로써 작가는 순수한 결혼의 의미를 다시금 떠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문화인류학을 접하게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편협한 사고에서 많은 부분이 수정을 거치게 된다.
가부장제사회에서 굳어져온 일부일처제와 모계사회 일부다처 그리고 일처다부
다양한 결혼의 모습을 작가는 강의하듯이 풀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축구경기의 플레이처럼 중첩시키며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2002년 월드컵을 타고온 축구문화에 대한 확산이 축구이야기를 양산해냈다고 봐야할 것이다.
주인공은 자유롭고 억압받지 않는 삶을 위해 애초에 결혼이란 것은 하지 않고 살려 했지만 남자주인공은 그녀을 독점하는 길은 결혼이란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길이라 생각하고 그녀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기로 하고 결혼에 성공하지만
어느날 그녀는 다른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이혼을 하는 게 아니라 덕훈이란 남자주인공과 결혼을 유지하면서 한재경이란 남자와도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기절초풍할 노릇이지만 그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여곡정끝에 그도 인정하기에 이른다.
여자는 사학을 전공한 컴퓨터프로그래머이고 그녀의 집엔 벽면이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 미인은 아니지만 볼수록 느낌이 좋아지는 타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자리매너에서 플레이가 남자를 감격시킨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세상 모든 남자들의 희망일 것이다..
여자가 능력있는 남자와 살며 그 남자가 섹스어필까지 하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는 것처럼.. 또 한가지 지적이기까지 하다면 말이다...
모노레일처럼 단순한 책들을 읽어대다가
논문을 읽듯이 작가가 다방면에 해박하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과거 이문열의 책에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그의 현학적 지식에 대리만족을 했던 것처럼
박현욱의 책은 그런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두남자 사이에서 임신을 한 여자는 딸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이후의 삶을 위해 그들의 삶이 방해받지 않는 곳으로 뉴질랜드행을 감행하기로 결정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책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결혼이란 내 생각엔
독점적 배타성을 획득하는 둘 사이의 약속이라고 여긴다.
인간이 간사하고 교활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죽을때까지 사랑만 하지 못할 것을 물론 안다.
그러나 결혼이란 제도로 둘을 묶고 거기에 둘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을 덤으로 얹어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단단히 묶은 끈이란 느낌이다.
만인의 남자가 아니라
나만의 배타적 독점이 가능한 남자
배타적 독점이 가능한 여자...
사랑의 떨림이 지나는 그 시간 이후에도 친구처럼 그 배타성을 지켜가겠다는 약속이란 생각이다.
이 책에서는 굳이 서로의 사랑을 그런 배타성으로 묶을 필요가 있느냐는 급진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지만 감히
사랑이나 섹스 배우자에 있어서 그런 과감한 의지를 결행하지 못하는 대다수 평범한 소시민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세지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소개된 모수족의 이야기를 옮기며 글을 맺을까 한다.
"집시들은 말이지. 결혼 할 때 서약을 한대. 부족의 연장자가 남편이 될 남자한 테 맹세를 요구해. '이 여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이 여자를 더나겠습니다'. 여자에게도 똑같은 맹세를 시킨대. 그렇게 맹세를 나눈 남자와 여자는 팔에 상처를 내고 두 팔을 같이 묶어. 두 피가 섞이고 둘은 이후부터 평생의 친구가 되는 거야.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피가 섞인 오누이의 관계로 남게 된대."
우리나라에 동남아노동자와 연변족이 흘러들어오며 어느날인가는 이들로 인한 사회문제가 이슈가 될 것이며 그로 인한 문학도 등장하리라 예견했었다.. 현실을 반영하는 게 문학의 몫이니까..
공선옥의 <유랑가족>은 마치 조세희의 난쏘공을 연상시키듯이 옴니버스 형식을 띠고 있다. 난쏘공처럼 화자가 바뀌며 이야기는 이어져 간다. 농촌의 어느 마을에는 며느리가 집나가고 아들은 도시에 그 며느리 찾아나서고 할머니할아버지만이 손자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도 있고 이혼 후 새로 가정을 꾸린 어느 집에선 그집 사춘기딸이 가출을 결행하고
연변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기까지 했으나 아내는 도시로 탈출해버린다.
그리고 가리봉으로 이들의 만남이 얽히면서 도시빈민과 농촌 이땅에 돈벌러 온 중국교포들의 삶이 그려져 있다.
이들의 삶은 떠돌고 있다. 그래서 유랑가족인지도...
한동안 공장노동자나
농촌의 삶이 그려진 책이 지겨워 지속적으로 구독하던 계간지 창비를 어느날부터 중단하고 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잊고 있었다.
나 살기도 바쁜데 그런 소수의 삶을 언제 들여다보라고
내가 뭘어쩔 수 있겠어? 하는 푸념은
눈돌리고 보지 않겠다는 응석에 불과했을 것이다.
삶은 더불어사는 것인데
내가 그들의 삶을 외면한다 해서 그 삶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같이 껴안고 가야할 소수의 삶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게으르고 등돌리고 살았음을
오랜만에 공선옥의 책을 읽으며
반성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따뜻한 위로의 시선쯤은
보내줄 수도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