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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3/ 세 가지

제비꽃1014 2008. 7. 26. 23:58

 

하나

며칠 전 양재에서 수업을 마치고 근처에서 일하는 선배언니에게

문자를 넣어 교대 앞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나오면서 선재 가져다주라고 영단어책을 한 권 주셨다.

영어단어와 숙어책은 내가 사준 것만도 넘쳐나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고 와 아이에게 주니 그걸 들여다 본다.

 

어젠 소감을 물으니 자기가 90%는 아는 단어들인데 나머지 10%는 모르는 것이라 들추어보고 있다고 전한다.

 

어제오후 일하고 있는데 큰아이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택배 왔어요..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터이라 택배가 오는 일은 거의 없다.

며칠전 그걸 보내주신 분한테 문자를 받아서 그게 뭔지는 알고 있었다.

오늘은 그걸 박스째 친정엄마에게 가져다 드렸다.

같이 열어보니 너무도 싱싱한 옥수수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엄마가 실하다고 감탄하셨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옥수수를 찌지 못한다.

언젠가 한번 해봤다가 실패한 이후로 다시 안찌게 된다.

 

옥수수와 자두는 여름성경학교 때 먹는 것으로만 인식되어 있다.

교회에서 먹은 기억만 있다.

옥수수를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는 건 아니고

집에서 엄마가 잘 안쪄주셨던 것 같다.

 

엄마는 참외와 복숭아 포도는 크고 맛있는 것으로 잘 사오셨지만

자두는 잘 안사다 주셨고 집에서 옥수수를 쪄먹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깨너머라도 옥수수찌는 것을 보지 못해서 지금도 할 줄 모른다.

뭘 하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엄마에겐 한없이 어려보이는 당신의 막내딸에게

아이고 그런 걸 왜 사왔니? 그냥 사다 먹지 하면서 한심해하시기가 일쑤였다.

 

엄마가 다 쪄서 동네 엄마친구분들께도 인심쓰시고

우리도 주시고 언니네도 나누어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왔다.

내가 잘 못하니까 엄마에게 해달라고 부탁드린 것이다.

내일은 실한 옥수수를 먹을 수 있겠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승현이는 미술을 공부하는 나의 학생이다.

미술을 하는 아이라 그런지 미적인 센스가 뛰어나다.

나이에 안어울리게 펜던트가 제법 큰 목걸이를 내가 잘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길에서 내게 어울릴 것 같은 목걸이도 사놓았다가 주곤 한다.

오늘은 나무로 깎은 별모양 빨간 목걸이를 보고 예쁘다고 했더니 선뜻 나를 준다.

 

내가 빨강색 굉장히 좋아하거든.

히히 웃어대며 철없이 학생이 준 것을 받아들고 왔다.

이쁘다.

내일 교회에 갈 때 흰 블라우스에 이쁘게 걸고 가야지.

 

 

큰아이 선재에게 언어영역 공부를 시킨다.

일요일 오후는 늘 내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보내느라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다.

특별히 해주는 건 없고

비문학지문을 같이 읽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텍스트를 가지고 같이 해본다.

그리고 고전문학을 같이 읽어주며 고전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켜준다.

선재친구 한 명과 같이 하는 무료수업이다

다행히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모의고사에서 비문학점수가 많이 올랐다고

두녀석 다 좋아하니 내가 잘가르치는 거야? ㅎㅎ

 

그런데 친구어머니가 오늘부터 선재와 함께 그집아들의 영어독해를 봐주시기로 하셨다.

그분은 과외선생님은 아니나 큰아이를 봐준 경험을 살려 같이 지문을 읽는 연습을 시키신다.

직장에 나가시느라 바쁜데 쉬는 토요일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봐주신다.

내게 고마운 무형의 선물이다.

 

나랑 같은교회 다니시고 성가대 옆자리에 앉는 분이다.

서로 책도 바꿔보고 수다도 만만찮게 떨었는데 친해져서

아이들 공부도 같이 봐주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이웃이 있다는 건

내게 너무도 고마운

축복

 

그리고 사족

베르베르의 <나무>와 장회익의 <공부도둑>

요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섬뜩했다.

귀찮아서 독후감은 정리안했는데

불쑥불쑥 베르베르의 글이 떠올라 멈칫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소설가의 혜안에 깊이 탄복하고 있었나보다.

 

사족 둘

며칠전부터 팔꿈치가 가렵다.

가렵다가 이젠 두드러기가 꽤 났다.

가끔 그러는데

알러지?

 

가라 앉으려니 기다리는데 안가라앉고 더 가렵다.

그리고 열도 난다.

 

견뎌보고 월요일엔 피부과에 가봐야겠지?

 

사족 셋 

학생집에서 살림을 봐주시는 할머니가 오늘은 나더러

아무리 많아도 마흔은 안되었을 터이지만 몇살이냐고 물어서

여자에게

절대로 나이를 묻는 건 아니시라며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다음에 맛있는 것 사다 드릴 게요..

 

할머니 껄껄 웃으시며 대충 짐작하신 듯?

아하? 마흔은 넘었단 말이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