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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내며

제비꽃1014 2008. 11. 3. 01:40

 

 

봄이 개나리의 노란빛으로 시작된다면

가을은 은행잎의 눈부신 노란빛으로 절정을 이루다가

스산하게 부는 가을바람과 가을비에 한자락씩 그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마감된다.

어제 이모와 함께 북한산에 가기로 했다면서 선휘는 이모에게 전화를 해댔지만 교회행사 때문인지 언니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아이를 달래서 더 어두워지기 전에 엄마와 동네산에라도 다녀오자하니 선휘는 고집스럽게 도리질을 한다. 이모와 북한산에 가야한단다. 그렇게 고집을 피우다가 일단 산에 갔다가 이모전화를 받으면 내려오자고 달래서 아들녀석과 겨우 산에 오르고 있었는데 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늦어서 산에 갈 수 있겠냐 하니 선휘가 성화라 다녀와야한다며 나더러 얼른 내려오라고 했다.

 

 가을이 되면서 아이와 함께 산에 올라보지 못한 나는 석양이 지기 전의 선휘모습을 겨우 카메라에 담았다.

 어색한 미소를 지어대는 나의 작은아들 선휘

나무계단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노랗게 빨갛게 가을은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동네 산인데도 이처럼 멋드러진 다리가 하나 있다.

 거리에 뒹구는 낙엽보다 호사스러운 낙엽?

떨어진 곳에서 그대로 거름이 되면 족한 산에 있는 낙엽이기 때문이다.

청소부의 손을 빌릴 새도 없이 그대로 이 자리에 거름이 되어줄 수 있는 낙엽의 마지막이다.

비탈에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가 몇개 놓여있지만 이 자리에선 잘 앉지 않는다.

워낙 얕은 산이라 정상까지 10분이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갔다가 내려와 언니와 함께 북한산에 다녀왔다.

 

그게 아무리 하찮은 약속이어도 아이와 한 약속은 꼭지키는 언니의 철학이다.

그 작은 신뢰가 쌓여서 선휘는 이모를 좋아한다.

5시 넘어 출발했기 때문에 내려오는 길은 어두워서 겨우 내려왔다.

그래도 빠른 시간에 땀흘리며 산에 다녀왔다.

나의 작은아들이 북한산의 웅장한 맛에 길들기 시작해 이제 동네 산은

우습게 알기 시작했다.

거기를 다녀오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을 녀석도 깨달아버린 것이다.

아직은 한두시간 코스로 다녀오지만

어느날은 시간을 늘려 다녀오리라 마음먹어보지만

나나 언니나 모두 만만찮게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이라 일요일 오후의 두시간 산행도

아직은 감지덕지하며 다닌다.

 

반팔 입고 오르던 산행에

긴팔을 입고

이젠 그 위에 겉옷을 더 챙겨입고 오르는 시기가 되었다.

산은 시인 안도현의 표현대로

여인의 서답처럼 활활 타고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다니다가

어느날 내게도 여유가 찾아오면

그때는 우리 산하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눈에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낼 것이다.

 

 

 

11월이 시작되었다. 이번주부터 크리스마스칸타타 연습에 들어간다.

이제 겨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별로 거룩한 인간은 아니지만

거룩한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그분도 좋아한다.

좋아하다보면 닮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소망에

매우 부족한 입술로 그분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