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화해로서의 문학 그 지난한 몸짓 /소설과 글쓰기/즐거운 나의 집

제비꽃1014 2008. 12. 2. 01:32

 

개인적으로 공지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비슷한 연배의 작가라 그녀의 이야기에서 많은 공감을 하기도 하지만

내게 그녀의 작가로서의 명성은 그리 치열한 투쟁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일었고

그녀의 화려한 삶도 뭔지 모르게 내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세번의 이혼과 각기 성이 다른 세 아이들...

 

이것도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된 이력 중 하나이다.

 

그래도... 공지영의 책을 가끔 읽는다.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읽는 이유를 대라면 글쎄.. 그냥 쉽게 읽히고 시대를 느낄 수 있어서였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자전적 소설을 최근에 읽고 나서 그녀에 대한 내 호감은 다소 수정되었다.

 

책에 그려지는 철없는 소설가 엄마의 어느 부분들이 나의 습관이나  말투와 닮아 있다고 느끼며 혼자 실소를 짓기도 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같이 살지 않는 것은 결손가정이 아닌데 엄마나 아빠가 같이 살지 않으면 결손가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언어적 습관에는 삶의 규격화된 틀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같이 양육하는 건 더말한 나위없는 환경이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느 한쪽이 불행하다면 그건 숨막히는 감옥이 될 것이다.

 

책중에서 소설가의 친정어머니가 하는 말... 내 딸이 이혼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하지만 불행해지는 건 더 참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음을 작가는 당당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 없는 행복을 이야기는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따뜻하게 살아가며 이루어가는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이 세상의 편견에 주눅들지 않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에서 베이스캠프같은 의미로서의 머물러가는 공간

집...

 

공지영이 세상과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화해하고 있다면

나는 여기 기호화된 활자를 엮어 세상과 화해하고 있다.

그리고 병처럼 언어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준비를 한다.

 

 

피곤해서 피해가려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작은아들이 오늘은 잠들기 전에 "엄마 책 읽어줘" 하고 주문을 한다. 욕심껏 5권읽어달라고 했지만 한권 읽어주고 나니 목이 아파서 힘이 들었다. 더는 떼를 쓰지 않고 아들아이는 잠이 들었다.

 

나의 아이들과 나의 베이스캠프에도 어둠이 내리고 있다.

그리고 나도 곧 베이스캠프 안에서 쉬려고 한다.

 

내일은 베이스 캠프를 벗어나

산 정상까지 갈 수 있으려나?

 

하루키 단편집에서 <TV피플> 읽고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