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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주일 사이

제비꽃1014 2009. 9. 7. 01:25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젯밤엔 문득 이곳에 들어와 다음에 내가 처음 올린글을 읽었다.

이것이 과연 내가 쓴 글이 맞는지 의아스러울 만큼 기억나지 않는 글들이었다.

 

2002년 다음에 내 글은 아이를 키우고 업고 하면서 자판을 두드린다는 글로 시작되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둘째를 낳으면서

모든 생활이 다시 재편되었지만

 

내가 세상에 나와서 잘 한 일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엄마가 된 일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나처럼 부족하고 오점투성이인 인간을

아이를 통해서 거칠게 나마 다듬어져

가게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인터넷에 발을 들여놓았고

어쩌면 외롭기도 한 이 공간에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가?

 

나 또한 외롭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외로워서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쓸쓸한 내 내면과 맞닥뜨리면서

이공간에 뺕어놓기를 시작한 연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외로움이라는 지독한 열병의 한 치유수단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아직도 오로움은 지속되고 있으며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으므로 치유는 지속되고 있다.

 

시간이라는 정지화면 속에서 다만

다른 몸짓으로 표현될 뿐이다.

 

 일곱살 선재가 열 여덟이 되고

 

 작은아이가 아홉살이 되어가도록 나는 이 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외로움 못지않게 공유하는 수다의 자리.. 이곳 게시판을 통해서..

 

 

 

 1일생 선휘의 아홉번째 생일

 드디어 불을 밝혔다.

 후우 후우 한번에 불어서 꺼야지..

 

그리고 며칠 후 목요일밤부터 선휘는 열이 펄펄 끓었다.

어른들은 예로부터 이럴 경우

이렇게 말씀하셨다.

크느라고 아픈 거야.. 하고 말이지..

 

성장통은 사춘기 신열처럼 시작되어 아이를 성숙해지게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통증은 볼 때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면서 안도한다.

그래도 여태까지 큰병 앓지 않았고

아토피도 없었고

입원 한 번 한 적 없이 커주었으니

건강하게 커준 거야..

 

이따위 열쯤 거뜬하게 견디고 일어날 수 있겠지 하고 낙관한다.

 

금요일 오전에 소아과를 거쳐 종합병원에 신종플루검진을 받고 돌아오니

내게도 두통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수요일 결과가 확진되어 나올 때까지는 알수 없으니 그때까지 학교는 보내지 말라고 했다.

 

과연 심각한 증후인지

학교 보건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아이의 증세를 물었다.

며칠전 결석한 같은반 아이는 독감으로 판명되어 3일 후 학교에 등교했으며 아직까지 한명도 발병하지 않았다고 전해주신다.

나도 그냥 지나가는 감기이기만 바랐다.

 

아픈 아이를 두고 수업을 다녀왔다,

저녁에 오니 처방전에 받아온 해열제를 먹고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처방전을 무시하고 집에서 먹이던 해열제를 먹였다. 그랬더니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병원 의사의 처방전은 도대체 뭐야?

 

그렇게 이틀을 내리 집안에서만 보낸 선휘...

 

오늘은 아이를 데리고 산보삼아 외출을 했다.

 

이젠 예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장난스런 표정을 지어댄다.

그래도 난 그런 모습마저도 천진스러워 사랑스럽다.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엄마니까..

 비눗방울을 뿜어대며 오후를 보냈다.

그 사이 나는 잔디밭에 누워

9월의 하늘을 만끽했다.

 2002년을 꺼내어 그 시간 안에 가두어둔 내 기억을 찾아 읽듯이

어느날 나는 2009년을 꺼내어 읽기 위해

시간의 기억에

이 고요한 오후를 가두어 둔다.

 

빛나는 9월의 햇살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