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아 가비
오늘은 하루종일 문밖에 한걸음도 나가지 않고 방콕했다.
아이들 아침 차려주고
학교와 도서관으로 나가버린
아이들의 등뒤를 바라보곤
혼자 점심을 먹었으며
아이들이 돌아오자
저녁을 먹였다.
그리고
내 오랜 염원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
책을 읽는 것이 내게는 여행이다.
만나러 가기 전에 설레고
책을 읽기 전에 심호흡을 가다듬는 것은 기대 때문이다.
올해
김탁환의 책들과 만나며
모처럼 읽고싶은 책을 읽는다는 행복감에 젖어 그의 책을 차례로 숨가쁘게 읽어댔지만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을 끝으로 도서관 서가에서 김탁환의 책은 더 이상 읽을 목록이 없었다.
그래서 몇번을 그 앞에서 되돌아서다가
그의 지귀소설까지 읽어대었으니 어지간한 김탁환중독자가 되었다.
<부여현감 귀신체포기>가 그것이다.
영화 <박쥐>를 본 탓일까?
뱀파이어이야기가 나오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어느날 아는 분과 우이천을 걷다가 김탁환이야기가 나오니
<노서아 가비>를 쓴 사람? 하고 되물으셨다.
잘 모르겠는데요..
참 생소한 책제목이라 여겼다.
이분댁에 마실을 가서는
그책을 기억해내고 <노서아 가비> 빌려주세요 하고 외쳤다.
원래 책을 안빌려주신다고 했는데도 마구 떼를 썼다. ㅍㅎㅎ
나같은 김탁환중독자에게 걸리셨으니 어찌 말리겠는가?
리심에서도 고종이 러시안 커피를 즐겼다는 부분이 묘사되어 있었다.
역관의 딸이 우여곡절을 겪고 러시아를 거쳐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고종의 커피심부름을 드는 여인이 되어 엮어가는 이야기이다.
<열녀문의 비밀>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김탁환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똘똘하고 당찬 느낌이 든다.
여성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텍스트로 분석되어도 좋을 소재들이다.
주체적인 경제활동을 하며
전통적 인습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 삶을 엮어가는 주체로서 씩씩하게 그려져 있다.
노서아 가비에 나오는 따냐는
귀여운 악녀로 그려져 있다.
그녀의 애인 이반에게 여러번 당하는 배반의 흔적조차도 치밀하게 넘겨가며
결코 배반의 흔적을 잊지 않고 있다가
복수를 하는 여인...
마지막 한탕을 호탕스럽게 해치우고
미국에서 러시아 문학을 읊조리며 카페를 하는 여인
따냐...가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이밤 나를 잠못들게 한다.
아...
사기꾼에게 푸시킨의 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기꾼이어도 그녀가 사랑스러울 수 있는 비결?
그녀 안에 도사린 귀여운 악마기질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자마저도 완전히 믿지 않는 영리하고 귀여운 사기꾼
타냐.. 그녀를 불러내어 친구하고 싶다.
내 안에 도사린 악마와도 손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새벽 두 시.
아침에 블랙커피를 한두잔 마신 게 다인데 아직도 잠못들고 있는 이유?
가끔은 커피가 아니어도 잠 안오는 밤이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