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밤
며칠째 잠의 리듬을 놓쳐 새벽 세 시 이후에 겨우 잠을 잔다.
늦게 잠을 자면 아침이 그만큼 늦다.
대신 밤에 늦게 자니 내가 움직이고 활용하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지만
강박처럼 새벽을 선호하는 나는
늦게 일어나면 죄인처럼 늘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오늘은 기필코 술의 힘이라도 빌려 잠을 자려고 맥주를 마셨으나 아직도 정신은 말짱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병은 마셔야 하는데 한병 겨우 마셨으니 아무 느낌이 없다.
김을 안주 삼아 먹고 있으니 옆에서 작은 아들놈이 엄마가 먹는 것을 탐하여 같이 김을 먹어댔다.
중독...
얼마전 큰아이가 이젠 공부를 안하면 불안하다고 말을 했다.
그걸 보며 나는 대꾸하기를 그게 중독이야.. 그랬다.
내가 그랬다.
공부에 대한 강박은 지금까지도 지배해서 가끔 꿈도 꾸니까 말이다.
내 나이쯤 과부가 되어 홀로 아버지와 고모를 키워내셨던 내 할머니는 밤이면 책을 읽고
틈나면 바느질을 하셨다. 뜨개질을 하셔서 조끼며 스웨터를 떠서 오빠와 언니에게 입히셨지만 할머니보다 엄마아빠와 더 많이 생활했던 나는 할머니의 뜨개옷을 한번도 입어본 기억이 없다.
나중에 할머니의 딸이었던 고모도
할머니처럼 겨울이면 뜨개질을 해서 사촌오빠들과 언니에게 입히곤 했다.
나는...
할머니와 가장 적게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할머니를 엄마처럼 가까이 지낸 나의 언니보다도
할머니의 기질을 더 많이 물려받았다.
이마가 나온 것도
시간이 나면 그 시간에 편히 쉬지 못하고 뭘 해야한다는 강박관념도...
몸이나 머리를 혹사해야만
온전히 휴식이 주어지는 내 말똥한 머리를 쥐어 뜯고 싶어지지만
여전히
나는 뭔가를 하고 있고 자신을 혹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우연히 퀼트샾에 들러 필통 패키지를 하나 구입한 이후로 아들아이 필통을 두 개 만들고 내것도 만들고
아주 오래전 사들인 퀼트책을 뒤적이며
힌트를 얻어
가방 하나를 만들었으며
가르치는 학생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필통 만들기를 시작하여
어깨가 아프고 손가락이 아프도록 바느질을 했다.
이 긴 겨울밤이 너무 길어서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문득 정신이 들어
어제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 왜 그러는데?
그 말을 던지자 금세
참았던 눈물들이 또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시 또 묻는다.
너 왜 그러는데?
바느질 그만 하고 잘 들여다 보기...
뭘 하고 싶어하는지
왜 시간을 속여 자신을 혹사하는지
잘 들여다보기..
그게 올 겨울 내 화두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