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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루키와 몇권의 책 책

제비꽃1014 2010. 2. 26. 15:44

 이번주로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고 다음주면 신학기를 맞는다.

 큰아이야 방학이어도 밤늦게 돌아오므로 별다를 것은 없지만

 새로맞은 학년이 고3이므로 적잖이 긴장하고 있다.

 새로 배정받은 담임선생님께서 전원반삭을 지시하셔서 짧은 머리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난주 일요일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들어섰다.

 내눈에야 잘 생긴 아들처럼 보이지만 그건 모든 엄마들의 애정이므로 솔직하게 들리지 않는다며

 짧아진 머리를 만지며 거울앞을 떠날 줄 몰랐지만 하루이틀이고

 요즘은 그런대로 적응되어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머리가 귀를 덮을 때쯤엔 수시원서를 쓸때쯤이라니 기다리다보면 머리카락이야 자라고

 세월도 갈 것이다.

 그보다 두려운 것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성적일 것이 분명하지만

 아이가 태만한 것은 아니니 지켜볼 뿐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는 없다.

 

 좀 피곤해도 아들아이와 때맞추어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주며 등을 토닥여주는 외에는...

 

 그와 달리 아직 어린 둘째에게 방학은 참 지루하다.

 아이와 약속한 대로 용산의 국립박물관에 다녀왔다.

 건축가가 남산의 조경을 끌어들여 이런 건물을 설계햇으리라 짐작되었다.

 아직 국사지식이 미천한 작은아이에게 박물관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나

 손붙잡고 여러 전시실을 돌면서 아주 쉽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는 정도로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다리가 아파서

 근처에 있는 가족공원에는 가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서관에서 대출했다가 다못읽고 반납한 경제학콘서트는 작년 가을 교보에 들렀을 때 아예 사버렸지만 지금도 드문드문

 읽고 있다. 언어의 기술은 큰아이가 읽고 극찬을 하며 내게 권해준 책인데 아직도 첫장도 시작하지 않은 책..

 

 대기 1번과 2번의 책들이다.

 

 팝스타존의 수상한 휴가는

 작은아이가 알뜰시장에서 만화책인줄 알고 잘못사온 책인데 오쿠다히데오가 지명도 있는 일본작가인 듯 하여 내가 대신 읽었다.

 존레논의 이야기를 일본작가가 담고 있었다.

 어느 시기의 아킬레스건처럼 막혀 있던 아픔이나 상처들을 심리치료로 치료해간다는 내용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 팝스타가 변비 때문에 고생하다가 마지막에 심한 요의를 느끼고 배설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비틀즈멤버의 존레논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큰아이 수험서를 사러 같이 서점에 갔다가 화가 난 듯 내책 한권을 끼워서 사온 것이 <아침의 문>이다.

 

버리지 않고 있던 한뭉치의 큰아이 자습서와 참고서를 두박스분량이나 버리면서 흔적없이 깨끗한 책들에 화가 나 있던 참이기도 했다.

노인네처럼 엄마 어릴 때는 말이지.. 이런 말을 늘어놓고 싶진 않지만

너무나 성의없이 공부 안하고 방치되다가 버려지는 책들이 아까웠었다.

청계천에 가서 비교적 깨끗한 헌책을 고르고 내게 없는 문제집은 학교에 가서 시험전날이나 당일날 친구들과 바꾸어보며 공부했던 때에 비해서 아들아이는 풍요의 세대를 살고 있으므로 내 이야기는 공염불이 될 터였다.

 

그래도 그거 밉다고 자습서나 문제집을 안사줄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일 것이다.

 

아이 책 사주느라 내책은 도서관이나 열심히 드나들며 빌려보건만 아들아이는 그런 배려를 알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아침의 문을 읽었다.

책은 현실의 세계를 담고 있지만

현실적이지 않기도 하다.

자살클럽의 멤버들과 만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해서 한 명은 의식이 돌아와 구토하고 정신이 돌아온다.

한 사람은 죽으려 하고

또 한사람은 원치 않는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 방치하려고 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아침이란 시간이 설정되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지만 그렇게 간단히 끊어지지 않는 게 삶이고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하며 한 생명이 생겨나는 것도 삶이다.

그건 참 둘다 유쾌하지 않은 일이나

아침은 어둠보다 희망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나는 여긴다.

그 진흙창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게 아침이라는 삶의 숙제가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와 다른 이야기들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하듯이 읽었지만 아침의 문이 가장 강렬하게 내 뇌리에 남아있다.

 

아이큐84면 저능아야 그치?

나는 1Q84를 처음에 그렇게 읽었다.

아! 하루키...

500쪽이 넘는 장편을 그것도 두권씩이나 숨가쁘게 읽어대게 만드는 마력을 그는 갖고 있다.

어젯밤 1권을 읽다가 2권으로 넘어가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녘 큰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 보내고

나는 잠에 떨어졌던가 보다.

세시간을 자고 일어나 읽다만 100쪽을 마저 다 읽으니 점심이 되었다.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책은 이어진다.

초등학교 4학년에 잠깐 스쳐 지난 이들 남녀는 마음속에 그때의 강렬한 인상을 심고 살아가지만

현실에서는 사랑으로 귀결되지 못한다.

 

1984년에서 어느새 달이 두개 떠 있는 1Q84년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루키는 이전에도 꿈과 현실 사이를 교묘하게 연결하며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흐름을

그의 작품에서 묘사했었다.

그의 보헤미안적 글쓰기를 좋하하면서도 너무 리얼리티보다는 몽환에 가까운 글들은 가끔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이번 책에서는 그것들이 조화롭게 녹아들어 있었다.

아마도 이전보다 나이들고 성숙해진 탓이겠지.

 

 그의 책에 등장하는 남녀는 모두 외동이다.

그리고 누구와도 친밀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품고 있는 까닭일까?

내면이 너무 여려서 상처받기를 두려워해 지나치게 다가서지도 누가 지나차게 다가오는 것도 피하는 것이다.

 

액자소설로 등장하는 <공기 번데기>와 리틀 피플?

마더와 도터

밀교적인 의식과 공동체사회..

 

여러 가지가 등장하고 작가는 그것을 농후하게 섞어서 이야기를 엮어갈 줄 알고

다음순간을 숨막하게 기다리는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읽어내리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어본다면

이 작가는 사랑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이다.

평생에 걸쳐 단 한명만 찾아오는 운명적인 것이라고 역설한다.

 

현실에서 끝끝내 만나지 못하면서 초등학교 5학년에 헤어진 남자아이 덴고와 여자아이 아오마매의 사랑은

지고지순한 순애보같지만 비감에 젖게 한다.

성년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각기 다른 섹스파트너를  만나며 그리 큰 결핍은 느끼지 못하지만

마음깊은 곳에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그들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김치냄새와 방귀도 포함하는 시큼텁털한 것이거늘

그저 아름답게만 아련하고 안타깝게만 그려져 있는 것은

문학이란 포장으로 위장되기 때문일까?

 

하지만 지금은 사랑할 때?

막연히 다가올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지 말고 용감하게 뛰어들어

사랑하는 이를 찾아야 할 것이다.

 

공기번데기의 모습으로 다가온 아오마메를 보고 난 이후 덴고는 그녀를 찾기로 마음을 다지지만

아오마메는 이미 다른 세계로 이동한 뒤가 아닐까?

 

아오마메의 사랑방식은

사랑하는 덴고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사랑이리라...

 밤새워 책을 읽고난 날이면 공들여 주변을 청소하게 된다.

 머리에 돌고 있는 언어의 실들을 뽑아내야 하는데 쉽사리 나와주지 않을 때 청소를 하며

생각을 가다듬는다.

 

그동안 바느질하며 나온 천조각들과 실밥들이 지퍼백 안에 고스란히 모였다.

이제 버려야 할 것같다.

 

쓰레기로 들어찬 지퍼백을 비우고 나면

그비닐 만큼

내 머릿속도

투명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