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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식탁

제비꽃1014 2010. 4. 30. 00:55

 

연일 비가 내리자 그 여자는 창문을 닦는다.

말갛게 비치는 유리창 너머로 그 여자의 봄이 화알짝 만개했기 때문이다.

 

그 여자의 방 창은 산밑이다.

산에는 초록들이 재재거리며 수군거리고 꽃들이 서로 잘난 척 뽐내느라 소란스럽다.

 

그 여자는 커튼을 한껏 재끼고 그 수런거림을 들여다보다가

비오는 날 창문을 닦고 유리창가에 앉아서 그 봄의 울림을 하염없이 바라다본다.

 

그 여자의 봄이다..

 

지난주 그 여자는 10년 만에 김밥을 싸서 그 여자 아들의 소풍 도시락을 싸려고 마음먹었지만

마음 뿐 다음날 아침 김밥집에서 사다가 아들의 도시락을 쌌다고 주변에 궁시렁거리며

한껏 웃어제꼈단다.

 

 

그런데.. 무슨 바람일까?

바람이 몹시도 불던 그날

그 여자는 다시 또 시금치를 사고 미나리도 한단 사버렸다.

 

그리고는 시금치를 데치고 당근을 채썰고 달걀지단을 부쳐놓고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큰아들이 밤늦게 집에 돌아오자 의기양양하게 그 앞에 김밥을 내밀며 으시댔다.

 

그날부터 4일째 그 여자는 김밥을 만든다.

이미 사다놓은 김 20장을 너끈히 먹어치웠고 오늘은 시금치 두단을 아예 사와서 넉넉하게 나물을 무쳐놓았다고 한다.

 

모자란 재료를 보충하려고 들여다보니 모든 재료가 다 바닥이 났다.

일단은 밥을 올려놓고 설거지를 하며 그 여자의 초등아들이 하는 숙제를 건성으로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이제 제법 그 초등 아들이 전보다는 성숙해졌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전에는 일일이 소리내어 같이 읽고 설명을 해주더니

며칠전부터는 아주 대범하게

숙제는 말이지.. 원래 혼자 하게 되어 있는 거라구..

찬찬히 읽어보고 일단 해 봐.. 하고 대범하게 아들을 믿어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밥을 하고 야채를 데치고 채썰어 준비하는 사이사이

들여다본 그 여자 아들의 수학익힘책은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비닐 장갑을 끼고

김발 위에 밥을 펼쳐놓고 이것저것 속을 늘어놓고는

깻잎을 두 장 깔고는 참치를 놓고 김밥을 돌돌 말았다.

 

그리고 그 여자는 그것을 썩썩 썰어서

11시 넘은 시간에 아들들에게 먹였다.

 

그 여자네 아이들이 며칠전부터 노래부르던 참치김밥을 드디어 완성한 것이다.

 

글쎄 오늘 낮에는  

그 여자네 어머니가 길을 지나다가 들르셨단다.

고구마 익어가는 냄새가 어찌나 고소한지 창문이 열려있어서 들르셨단다.

 

그 여자네 식탁에 앉아 그때 막 구운 고구마 한 개를 드시고 일어서시는

그 여자의 어머니께 흑초를 탄 요구르트도 한 잔 드리는 그 여자의 눈이 밝게 빛났다.

 

요즘 그 여자네 식탁에는 사람사는 냄새가 가득하다.

밥냄새가 퍼지기 때문이다.

 

그 여자네 고딩 아들이 시험기간이라 집에 와서 밥을 먹는 까닭이다.

 

음식을 먹어주기만 하는 것도

크나큰 행복임을 깨닫고

요즘 그 여자

날마다 김밥을 싼다.

 

그 여자네 식탁에 밥냄새가 피어오른다.

고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