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견디기/걷기
수마가 서울을 훑고 지나기 전
비가오는 오후에
일요일 주일예배를 다녀와 우산을 챙겨서
아이들과 중랑천을 걸었다.
아직 어둠이 깔리기 전의 이 시간을 너무나 사랑한다.
햇볕은 사위어가고
채 어둠이 몰려오기 전의
저녁 어스름시간에 중랑천 입구에 도달하여
횡단보도에
아이들을 세워놓고 셔터질!!
길이 젖어 있었지만 걷기엔 나쁘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간간이 비가 흩뿌려서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걸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1호선 전철을 타면
한쪽길로 판자촌같은 집의 풍경이 보이곤 했는데 거기가 어디였는지를 이곳에 10년 다 되어가도록 살면서도 몰랐는데
중랑천을 걸으면서 알게 되었다.
고물상과 철둑길..
어울린다.
기찻길옆의 좀 누추한 풍경화처럼 말이다.
길을 걷다보면 중랑천변의 여러개의 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중 하나
비가 점점 더 오자
물이 좀더 세차게 내려가기 시작한다.
다리 밑의 초라한 모습..에 왜 나는 멈추어 섰을까?
녹슨 쇳물과
시뻘건 자국들이 이루어내는
그 초라함을 눈여겨 본 탓이리라.
다리 밑이 빚어내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풍경의 한 조각이
누덕누덕 기워져 있는
내 삶처럼 여겨져서
잠시 연민이 깃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가 점점 더 오기 시작했다.
더 세차게 중랑천의 물살도 세어졌다.
도로에 물이 차올라 도저히 더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리로 주욱 가면
왕십리의 한양대 근처까지 이어져 있다고 아들녀석이 말해주었지만
독립운동하러 나선 길도 아닌데
종아리를 적시면서까지
흙탕물을 건너고 싶진 않았다.
아쉬워도 돌아서 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로등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으니
어둠이 찾아온 탓이다.
돌아서서 집으로 왔다.
왕복 세 시간 걷다.
좀 부지런을 떨면 전철역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오간다.
그때 지나게 되는 우이천변의 풍경
이 길은 왕복 두시간 코스의 북서울 꿈의 숲으로 가는 길의 소나무길...
담쟁이 덩쿨이 나타나면 거의 다 온 것이다.
비가 많이 와서 그새 풀들은 무성하게 쑥쑥 잘도 자랐다.
인공으로 만든 것이라도 개울이 있다는 것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우이천이나 중랑천의 냄새나는 하천이 아닌 돌돌돌 흐르는 맑은 냇물일 때는 더더욱..
기말고사가 끝나고 일찍 집에서 쉬고 있었던 큰아이 하고만 이 북서울에 여러번 다녀왔다.
아이의 학교 친구들 이야기며 잡다한 그녀석의 고민을 같이 들어주면서...
같이 걸어 다녔던 이길이
참 행복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