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7년의 밤
이태 전에 나는 김탁환에 몰입했고
작년에는 권여선과 김영하에 몰입했다.
김탁환은 도서관 서가에 방대한 책이 늘어서 있어서 10권도 넘는 책을 읽어내는 일이 아주 즐거웠다.
그에 비해 권여선은 책이 3권밖에 없어서 좀 아쉬웠고
김영하는 권여선과 김탁환의 중간지대처럼 적당히 서가에 책이 구비되어 있어서 틈나면 나는 김영하를 대출해 읽곤 했다.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를 제일 먼저 읽었고
그녀의 대표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두번째 읽었다.
단언하건대 나는 고급독자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그런 내가 그녀의 세번째 책을 대출하지 않고 돈을 지불하여 기꺼이 샀다면
정유정은 글을 아주 잘 쓰는 작가이다... 내 오만함을 맘껏 비웃어도 좋다.. 나는 원래 겸손한 것과는 거리가 멀게 건방진 인간이므로..ㅋㅋ
그래서 도서관 서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간 < 7년의 밤>을 사버렸다.
지독한 활자중독인 내가 책을 손에서 떼는 일은 별로 없다.
책은 늘 끼고 살았다.
20년 만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김범우와 염상진 그리고 정하섭 소화가 다시 살아나 내 의식 속으로 걸어 들어왔으나
내 젊은 날의 열정 대신 나는 그들을 천천히 기다려주며 아주 오래 오래 곱씹으며 읽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읽다가 던져두고 다른 책 읽기를 서슴지 않았다.
땅콩집을 지은 건축가와 건축기자의 이야기를 읽었고
집지을 돈이나 땅이 없으면서도 그책을 읽으며 행복한 망상은 하였다.
정유정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성장소설이다.
로드무비처럼 며칠간의 기록이다.
광주사태 즈음에 자취가 묘연해진 아빠를 그리워 하는 중학생 남자아이가 약사인 엄마의 재혼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당시 수배중이던 친구 형에게 도피자금과 도피에 필요한 서류를 친구 대신 전하러 가는 길에 겪게 되는 며칠간의 이야기이다.
그 여행에 동행한 다른 두 동급생친구.. 한명은 과보호 속에 자라는 외동아들이고
한 명은 상습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피해 늘 뛰어다니는 우등생 여학생이다.
거기에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할아버지와 여학생의 아버지가 키우는 개가
그 여행의 동반자들이다.
성장통을 겪는다는 건 무엇일까?
상처가 곪고 딱지가 앉는 일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통과의례처럼 그것을 거쳐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7년의 밤은
어제 처음 읽기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우느라 책장을 덮었다.
사형수 아들의 고단한 삶 앞에서
나는 책장을 넘길 수 없었고
기어이는 눈물을 보이고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그가 흉악한 사형수의 아들인 것이 들통나면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전학했고
그 아들의 양육비를 나누어 가진 친척들은 석 달 이상 그 아이를 견뎌내지 못했다.
그 아이가 별나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고
체면 때문이기도 했다.
7년 동안 전학을 거듭하다가 결국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루어내는 아들..
가슴이 아프게 아려왔다.
그래서 더는 한 줄도 읽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그를 밀어냈고
그 안에서 버텨내는 최서원의 삶이 너무 아파왔기 때문이다.
정유정의 책에는
폭력으로 군림하는 아버지가 곧잘 등장한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의 개장수 아버지가 그랬고
7년의 밤에서 오세령의 아버지 치과의사가 그랬다.
그들은 한결같이 연약한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매맞은 기억이 없어서
온전히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다.
아버지를 워낙 좋아하는 딸이었고 나는 아버지의 끔찍한 막내딸이었으므로..
남자들은 왜 그처럼 약한 여자에게 권력을 휘두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도 두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이 세상에 던져진 삶 앞에서
온전히 지배되는 소왕국을 꿈꾸었는지도 모를 일..
실제로 남자들도 그 부담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가족부양에 대한 책임과 가장에 대한 부담감..
가부장제 사회.. 패트리아키.. 여성학을 배우며 익힌 단어.. 패트리아키
실제로 미숙한 남자들이 가정이란 소우주를 아주 많이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책임질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책임져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사실이 못내 힘겨운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결혼을 안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영제 란 치과의사의 뒤틀린 사랑방식과
스프링 캠프의 개장수 아빠의 폭력은 닮아 있다.
그때문에 딸들은 그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고자 달리고 달리고 또 달아난다.
그녀들은 아이들이고 어떤 힘도 대항할 수 없을 만큼 어리고 나약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삶도
그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삶은 아닐까?
맞닥뜨려 대항하기엔
너무나 힘이 없고
또 윤리적으로도 친부라 아무런 복수도 꿈꿀 수 없는 상황..
부단히 밀어내는 세상에서 포기 하지 않고 살아남은
최서원에게
축배를 들기 위해
오늘밤
막걸리를 한 병 사왔고
그것을 비웠다.
올여름엔
정유정이란 작가와 만난
기념으로...
나도
미약하나마
내 존재의 증명을
이처럼
활자로 남긴다..
2011년 9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