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술꾼과 조우
며칠전 주말도 아닌데 술이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사는 곳이 서울끝이고 아무때나 한잔 하자고 약속없이 불러낼 사람도 마땅찮아서
집으로 오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지나치게 자주 마시는 사람도 별로고
마실 때 너무 조금 마시는 사람도 주량이 맞지 않아 별로고
또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마주 앉아있기 별로고
이렇게 까다롭게 속으로 헤아리다보니 편안한 술친구 하나를 못만들었다.
그냥 동네 마트에 들러 오랜만에 흑맥주 스타우트를 피처로 한 병 샀다.
내 주량에 비하면 좀 약하지만
혼자서 그 정도면 약간 모자랄 정도로 괜찮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낮에 좀 많이 먹은 탓인지
소화가 안되어 사다놓고만 마시지 않았다.
열두 시가 다 되어 아들녀석이 귀가했다.
학교 동아리방에서 납땜을 하다가 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들은 전기공학부를 다니니 그런 것도 익히고 있는 중..
손을 좀 데이기도 했다는데
같이 한 친구들이 한잔 하자는 것을 집이 멀어서 그냥 왔다고 했다.
술이 좀 마시고 싶은 날 아니냐?
하고 물으니 그렇다네.
자기도 안마신 지 좀 되었다나?
아니.. 점점 술꾼의 반열로 들어서고 있군.. 쿠쿡
그런데 뭐가 있어야지? 하고 묻는 아들에게
맥주도 있고 안주로 번데기 통조림 사다 놓은 것도 하나쯤 굴러다닐 테고
뭐 김도 있지..
열두 시인데 괜찮냐?
다음날 10시 30분 강의라 괜찮다네..
스무 살 아들과 번데기를 안주로 좀 마셨더니 잔이 비어갔다.
좀 모자라지 않냐? 후후
응 좀 모자란 느낌..
하긴 엄마 혼자서도 이건 다 마셔도 기별이 별로 안오지..
나누어 마셨으니 좀 모자라긴 해 그치?
아드님께서 벌떡 일어나더니
24시간 편의점에 가서 피처 한 병 더 사왔다. 그때가 새벽 1시쯤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라고 아들의 체크카드에 10만 원을 넣어주었더니
이럴 때는 엄마에게 맥주값달라는 말을 안하고
자기 카드를 들고 챙겨서 나간다.
뭐 녀석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으니
부리는 호기이겠지?
사과를 먹고
요구르트를 한컵씩 마시고 잤다.
요구르트가 숙취에는 정말 좋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가 하나도 안아프다.
그래서 술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아들녀석은 꼭 한 컵씩 마시고 잔다.
늦게 아주 단잠을 자고 나니
큰아이가 깨운다.
엄마 선휘 학교 안보내요?
8시 30분..
부랴부랴 아이를 깨워 아침먹여보냈다.
엄마가 와인을 마시면 옆에서 같이 홀짝여주고
맥주 마시자면 같이 마셔주는 아들..
20대 술꾼을 집 안에 키우고 있다.
하지만 이도 몇 달 남지 않았다.
내년이면 아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떠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