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이번주는 치과가 휴진이라 해서 치과도 주중에 다녀왔다. 당분간 치료하러 다녀야 해서 토요일 오전엔 치과 예약이 되어 있는데
그래서 모처럼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이었다.
둘째 졸업식에 초밥집에 가기로 했었다. 둘째가 전에 갔었던 초밥집에 가고 싶다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막상 졸업식 당일에
큰아이가 장이 안좋다고 설사를 했다고 하여 날것을 피하느라 그날은 메뉴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먹었다.. 작년 6월에 갔었다고
둘째가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많이 가고 싶어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때 가곤 가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거기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집에서부터 걸어갔다. 차로 몇정거장 되지만 걸어가면 30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에.. 떡집을 지나게 되니.. 멈추어 서서 약쑥으로 만든 떡을 좀 샀다. 내가 몇년 전가지만 해도 구입해두고 나의 저녁으로
한 개씩 챙겨먹던 떡이었다. 지금은 밤늦게까지 일을 안하니 그 떡을 사다두지 않은 지도 오래 되었다.
전에 H선생님과 거길 지날 때도 그 떡집앞을 지나며 같이 떡을 산 기억이 떠올라서 선생님을 기억하며 떡을 좀 구입했다.
너무 오래 외식을 안한 것인지.. 귀찮아서 집근처 음식점에서만 사 먹은 것인지.. 전에 갔던 초밥집 상호가 눈에 보이지 않아 왔다갔다 하다가 깨달았다.. 없어져버린 것을... 너무 늦게 왔나보다.. 깔끔하고 맛있었는데.. 왜 없어졌지?
젊은이들이 주로 다니는 번화가라 가격이 덜 착해서 수지가 안맞았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그렇지 가격이 착하진 않아서
우리도 자주 갈 엄두는 안내던 곳이었다.
그래도 뭐.. 오늘은 초밥을 먹기로 했으니 다른 초밥집을 찾아가 먹었지만 이전의 초밥집처럼 가쓰오부시 날리는 볶음 우동도 없고 골라 먹기 어렵긴 했다. 날생선을 먹긴 하지만 즐겨 안먹어서 나는 초밥 이외의 익힌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드리고 선생님의 일터 근처로 향했다.
가면서... 나오실 수 있냐고 했더니.. 몸이 안좋으니 그냥 일터로 찾아오라고 잠깐 짬이 난다고 하셔서...
딸기 바나나 주스를 선생님 몫으로 사고 나와 아이들 음료도 테이크아웃으로 구입해 들고 갔더니.. 마중을 나오셨다.
선생님은 8번의 항암중 6번을 하셨고 2번이 남았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학교 선배도 아니고 사촌 언니도 아닌데.. 어쩌다 알게 되어 지난 세월이 15년쯤 된다.
우리 아이들 간간이 밥도 사주시고.. 큰아이 군대 갈 때도 따로 밥 사주시며 보내주셨다. 그냥 아이들에겐 이모나 고모 같은 존재이시다.. 선생님의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과 성씨가 같다 하셔서.. 꼭 사촌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나와는 열두 살 띠동갑이시다.
친언니 이외에 언니라는 호칭을 잘 못붙인다.. 넉살이 그리 좋은 위인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분의 전직을 이유로 선생님이라 부르고.. 선생님도 내게.. 반말을 안하신다.
무남독녀 외딸로 자라나 피붙이 형제가 없지만.. 대신 두루두루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시던 분인데..
암진단이 나와 수술도 받으시고 지금은 항암중이시다.
얼굴이 반쪽이 되셨다. 항암하고 오면 잘 못드신다고 한다.. 그건 이전의 내 친구에게서도 전해들은 말이다.
손을 잡아드린다든가 안아드린다든가.. 하는 살가운 행동도 못하고.. 데면데면 얼굴 뵙고.. 사간 주스 드리고..
떡도 나중에 드실 만 할 때 드시라고 챙겨드리고.. 준비해간 봉투를 주머니에 넣어드리고 왔다.
민망해 하시는 선생님에게.. 제가 같은 처지였으면 저한테 이 정도는 해주셨을 거에요.. 그러니 반대 경우이니
하나도 민망해하실 필요 없다고.. 입맛 도실 때.. 입에 맞는 것으로 사서 드시라고... 그렇게 전해드리고 헤어졌다.
엄마 매니아인 우리집 아이들.. 엄마가 만나러 가는 선생님을 같이 뵈러 가자고 했더니 두말 않고 따라나서 주어서 고마웠다.
저녁약속이 있다는 큰아이는 약속 장소로 향하고
나는 둘째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또.. 나보다 부자인 친구를 만나면 밥도 술도 잘 얻어 먹는다. 원래 평등은 친구사이에선 더 가진 자가 내는 게 진리..ㅎㅎ
대신 또 나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내가 기꺼이 밥도 술도 산다. 문제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는 사람에겐 그렇게 한다.. 물이 높은 곳에서 흐르듯.. 돈도 더 가진 사람이 쪼끔 더 베푸는 거지 뭐..
수술 받으시고.. 한 번 뵈야 하는 데 못가본 마음의 빚을... 치과 안가는 토요일에 갚을 수 있어서
의미있었던 하루에 대한 기록...
집에 오는 길에.. 드린 금일봉이 과하다고 문자가 왔다.
과하지.. 친정 엄마에게도 요즘 용돈 드리지 못하니.. 엄마는 요양원에 계시고 돈을 사용하실 일이 없으니 드리고 싶어도 못드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 빚을 내게 갚을 일은 없게 아프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그냥.. 다행히 이 시기에 일할 수 있어서 돈을 벌고 있어서 그럴 수 있었을 뿐이다.
돈이란 돌고 도는 거라고 했으니.. 돌게 그렇게 회전시키는 게 맞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