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상자

친구를 만나다

제비꽃1014 2003. 3. 1. 10:19

지난 일요일에 학교에 갔었다.
허옇게 잔설을 뒤집어쓰고 있는 산이 나타나자 고향에 온듯이 탄성을 지르며 내 모교방문길은 시작되었다.

한 친구가 차를 가지고 나와서 사이좋게 한 차에 타고 근처의 품위있는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청하 네병을 비웠다.

옛날 같았으면 학교 앞 분식집에서 대충 끼니를 해결했을 텐데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나 보다.

10년 풍상을 겪어냈지만 언뜻 언뜻 자신의 얘기를 비칠 뿐 누구도 자세한 내막은 말하지 않는다.
서로서로 그 사이를 건너뛰며 그림 맞추기를 해버린다. 너무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 말하지 않는다면 그저 짐작할 뿐이지 뭐.

예쁜 찻집에 앉아 수다를 떨다보니 저녁어스름이다.
집에 가야한다는 두친구를 보내고 이렇게 나오기도 쉽지 않은데 그냥 들어가긴 너무 억울해를 외치며 친구 한명과 더 있다가 들어가려 했지만 결국 넷이 모두 그렇고 그런 70년대 선술집같은 정갈하지 못한 집에 앉아 맥주를 한잔씩 비워내고 집에 왔다.

돌아오는 길에 딸기를 한바구니씩 사들려 보내는 친구덕에 아들아이에게 딸기를 먹였다.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드는건 기대가 나를 흥분시켰기 때문인가 보다. 서로 안늙었네를 섞어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떴지만 가슴에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 상처들을 조금씩 들여다 본다.
그건 내 취미생활이니까...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상처는 어줍잖게도 내 통찰과 관찰의 몫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씩씩하게 그들 앞에 서 있고 웃으며 산다. 징징 짜거나 운다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즐겁게 사는 척 한다.

세월이 지나면 지금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그때의 상처를 말 할 수 있는 것처럼 또 지금의 상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삶을 견디고 살아내는 방식이다.

어제도 술을 마셨다.
그래서 선휘가 밤새 뒤척이는지 어젠 모르고 푹 잤다. 늦은 아침을 먹고 오랜만에 컴퓨터에 들어와 밀린 글을 읽고 불필요한 메일을 삭제한다.

삭제키를 눌러도 삭제되지 않는 것들은
가슴에 남아있다.

그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