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신열

제비꽃1014 2004. 2. 6. 22:20

아프다.

 

며칠째 오한이 나고 약먹고는 또 자고

그저 약먹기 위해 겨우 밥을 먹고

또 잔다.

 

열이 높다는데도 땀이 나질 않아

계속 오한이 나다가

병원 가서 주사를 맞으니

그제서야 땀이 난다.

 

너무 지치고 힘들었나보다.

목소리조차도 갈라져

말도 잘 할수 없다.

 

결혼해 한달이 지난 어느날

지금보다

더 피곤해서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아버지가 전화해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는

눈가를 훔치셨단 소리를 나중에 엄마에게서 들었다.

 

엄마가 곧 오셔서 인삼도 달여주시고 밑반찬도

해주고 가셨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먹고

편히 살다가

안하던 밥하랴

직장다니랴

서툰 살림살이 하느라 너무 지쳐 있었던가 보았다.

 

농담처럼 요즘에 떠들고 다니곤 했다.

누울자리 보고 발을 뻗으랬다고

아플 여유도 없다고

중얼거리곤 했는데

내 오만을 비웃듯

독한 몸살감기가 왔다.

 

쉬어가라는 신호이다.

누우면 자고 또 누우면 자고

몇년간 못잔 잠을 보충하듯이 계속 잤다.

 

모든 잡념과

모든 미련을 털듯이

그렇게 털어내며

내 마흔의 딱지는 시작된다.

 

내 갈라진 목소리를 듣고는

한동네 사는 언니가 퇴근길에

작은아이를 데려갔다.

군고구마 한봉지를

내게 남겨두고서....

 

아이 보내면서 밖을 내다보니

눈이 쌓였다.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려

모든 더러움도 치부도 가려주는 눈

 

그 눈을 바라보는 나도 하얗게 비어간다.

 

뭐든 혼자서 잘 할 수 있다고

오만부리지 않기

가끔은 너무 힘들다고

앓는 소리도 내고

위로가 필요할 땐

수첩 뒤적여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기

그렇게 다짐해본다.

 

그래도 너무 힘들다.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이제야 알아간다.

 

뭐든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이 넘치던

스무살의 객기는 다사라지고

이젠 조심조심 걷는 마음이 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선생님이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대학다닐 때 읽었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무턱대고 짜라투스트라를 사서 읽었고

고3 시험이 끝나고 도스토예프스키를 독파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것을 읽었을까?

잘난척 하고 싶은 오만은 아니었는지?

 

약먹고 나니 또다시 땀이 난다.

 

오랜 갈망처럼 도스토예프스키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천재적인 글솜씨에 반해 그긴 장편들을 읽어내던 기억이

새롭다.

 

다시 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