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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할머니

제비꽃1014 2006. 9. 26. 23:29

어제 오후 은행에 다녀오는 길에

은행 앞 노점에서 토스트를 굽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전에도 그 할머니는 그곳에 계셨는데

나는 그 길에서 단 한번도 사먹지 않았다.

 

길건너에도 새로 생긴 깔끔한 생과일 주스와 토스트가게가 있어서

가끔 아이들 간식으로 그걸 사가기는 했지만

할머니의 가게에선 산 적이 없었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소시민이라

할머니의 인정에 이끌려 토스트를 사먹는 행위를 할 만큼

인간성이 좋진 않다.

 

그러다가

무심코 어젠 그 앞에서 보니

비쩍 마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서로 도와가며

그걸 하시는 것을 보니

그걸 사고 싶어졌다.

 

오후라 그런지 어떤 일가족이 네개를 사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로도 청년 두명이 기다렸다.

 

그래도 할머니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빵을 구워내고 야채에 달걀를 섞어내고

그리고 하나하나 호일에 따로 싸서 포장해주었다.

 

작은 컵 하나에 꼭 일인분씩의 야채만 넣어서 달걀을 넣고 토스트속을 만들었다.

 

할머니가 부치는 사이 할아버지는 포장도 해주고 할머니에게 손이 쉽도록

야채에 달걀 섞어주는 것도 하셨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는 치아가 거의 없다.

입이 합죽이같았다.

 

그래도 두분이 부지런히 토스트를 구워내며

천천히 기다리는 내게 정성껏 토스트 만드는 법을 보여주셨다.

늘 바쁘다고 동동거리며 다니는 내가 길거리에서 토스트를 사기 위해

그렇게 기다린 적은 거의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우스개소리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낱말게임에서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을 설명할 때 할머니에게 그랬단다.

우리 사이를 뭐라고 하지?

 

할머니는 너무도 당연하게 웬수 라고 했단다.

그에도 굴하지 않고 할아버지는 두 자말고 네 자로? 하니까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평생웬수...

 

이렇게 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그때까지 자기랑 살아온 할머니가

천생연분이라고 여기지만

할머니에게 남편은 웬수처럼 지겨운 존재라는 걸 모른다.

 

그럴지라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은빛머리 휘날리며 같이 외출하시거나

이처럼 같이 일하는 모습을 뵈니

인생에 대해 감사할 일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저 나이에도 부부가 저렇게 열심인데 더 젊은 나는

정말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반성도 물론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함께 하는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한참이고 그걸 바라보았다.

 

아들아이의 간식을 사며 서서 기다리던 10분 동안

나를 잠시 비죽 웃게도 하신

토스트가게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감사한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내게 그 따스함을 느끼는 여유를 주신 것에 대함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