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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제비꽃1014 2006. 12. 17. 16:49

 

사람도 오래 알아야

알게 되는 사람도 있고 단숨에 직관으로 알게 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할 것이라고 느끼듯이

여러권 읽지 않아도

작가도 직관으로 단숨에 읽히는 사람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게 그런 작가이다.

한 번 읽은 이후로 나는 하루키의 열성적인 팬이 되어버려

하루키로 이름된 것이라면 다 집어들고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내 예감처럼 하루키의 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때로 너무 상상 속의 무의식이 혼재되어

머리가 아픈 적도 있지만

나는 그의 메세지만은 그런대로 잘 읽어내는 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 느낌에 기인하지만 말이다.

 

단 이틀 동안에 몰입해 읽은 책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하지메라는 남자가 유년을 거치고 청소년기를 지나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만나는 여러 명의 여자와 엮어가는 이야기가 근간을 이룬다.

 

일본의 중산층 가정에서 외동아들로 자라나는 하지메는

자기처럼 외동딸인 시마모토가 전학을 오자

여러가지 동질감을 느끼고 친해진다. 하지만 시마모토는 예쁘고 똑똑하지만 다리를

약간 저는 소아마비 증세를 가졌다.

 

둘은 열두살 시절에 시마모토의 집에서 레코드를 같이 듣고

그나이의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보다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성장해가지만

이사와 중학교 진학으로 멀어진다.

 

그리고 이즈미라는 여자친구와 사귀게 되지만

도쿄로 대학진학을 하며 그녀와도 단절되어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과서편집 출판사에서 교열과 교정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여행중에 우연히 스친 유키코라는 여인과 만나 결혼을 하고

딸 둘을 낳고 무난하게 그야말로 무난하게 살아간다.

건설업을 하는 부자장인의 도움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장인소유의 건물에서

재즈바를 운영하는데 사업수완을 발휘해 두곳으로 늘리지만

더는 사업확장을 하지 않는다.

 

자기의 삶이 거기에 매이게 될까 싫었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여긴 자신의 삶이 헝클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운영하는 재즈바가 잡지에 소개된 후

어릴 때 그의 연인이었던 시마모토가

비오는 날 저녁 홀연히 나타난 이후부터이다.

 

너무나 재미없는 일상이 돌아갈 때

간혹 하지메는 상상했었다.

시마모토와 함께라면 이 일상의 느낌에 대해

아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거기서 즐거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앞에 나타난 시마모토는 베일에 가린 채 아주 가끔씩 재즈카페에 와서 칵테일을 마시고

돌아갔다가 몇달 후에 나타나곤 했다.

 

그사이 하지메는 한동안 서성거리고 겨우 일상으로 돌아가

안정을 찾을 만 하면 그녀는 또 나타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들이 과거에 같이 듣던 냇킹 콜의 레코드를 들고 나타나

하지메에게 선물하지만 하지메는 그것을 같이 듣고 싶다면서 하코네의 그의 별장으로 그녀와 같이 떠난다. 그날밤을 같이 보낸 후 그녀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레코드도 가지고서...

 

집에 돌아와 아내 유키코는 그의 변화를 눈치채고

헤어지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만 그는 대답을 미룬다.

며칠간 거실소파에서 따로 자고 유치원 다니는 두딸을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아침이면

이전처럼 수영을 다닌다. 그리고 부부는 다시 화해한다.

 

아내 유키코는 말한다.

사실은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언젠가 남편이 돌아오겠다면 자기가 받아주어야할 것 같아서

죽지 않았다고...

 

너무나 완벽해보이는 행복의 이면에도

또다른 외로움이 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결코 동일시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지메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여긴다.

 

지금 현재의 삶이 부족해서가 결코 아니라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인간은

선험적으로 외로운 것이 아닐까?

 

너무나 이야기가 잘 통하고 어울린다고 여기지만

운명은 늘 비껴가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엔 너무나 멀리 와 있어서

결코 처음지점으로 회귀할 수 없다.

 

 

여러번 주어지지 않는

단 한번의 일회성 때문에

삶도

비극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절대로 대체 불가능한 게 꼭

있는 법이지만

그것을 언제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릿하게

아파하고

그리워하며 살도록

그렇게

운명지워졌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메의 재즈바를 떠올리며

내게도 그와 같은 재즈바가 있다고 여겼다.

 

이 공간..

 

바로 나의 블로그이다.

 

그렇게 나는

기다린다.

 

하지메가 하염없이 시마모토를 기다린 것처럼...

 

어느날인가

같은 감정과 느낌을 지닌 이들이

찾아와 내게 말을 걸어주고

나는 그들과 교감한다.

 

마음 속에

시마모토를 간직한 채...

 

시마모토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기다린다.

 

그리움은

한번에 생겨나는 것도

지워지는 것도 아님을 알기에...

 

내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나...

그를 나는

이곳에서

매일 만나고 있다.

 

혼자 끄덕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