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2004.4.4
피곤에 지쳐
돌아오는 밤이면
어릴 때 읽었던 우렁각시를 떠올린다.
내게도 우렁각시처럼 어여쁜 아내가 있어
집에 돌아가면 맛난 반찬과
정갈하게 치워진 집
따뜻한 냄새가 풍기는 느낌을 맛볼 수는 없는가?
그리고 소리없이
사라져
누가 해놓고 간건지 궁금해하는 행복을
날마다 누릴 수는 없는가?
그러나 얼굴보이는 우렁각시가
내게도 생겼으니
가끔 집에 다녀가시는
내 친정 어머니
딸에게 먹이려고
나물도 해오시고
생선도 구워 놓으시고
정갈하게 집도 치워놓으시고
집안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집 안에 온기가 감돈다.
아이들도
외할머니손길을 타고
말쑥해져 있다.
어머니가 정갈하게
차려주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면 그냥 씻고 잠만 자라며
설거지도 못하게 하신다.
젖이 부족해
그옛날 귀했다는 가루분유를 섞어서
먹고 자란 막내딸인 나는
엄마를 피곤하게 하는 딸이었다.
너무 까탈스러워
엄마가 해주는 도시락반찬도
입맛 없다고 반찬투정해댔고
엄마가 골라주신 옷도
대놓고 싫다고는 안했지만
잘 입지 않아 엄마를 조심스럽게 했었다.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무조건 내말에 순종하는 큰아들과 달리
자기주장이 강한 어린 둘째는
어릴 때의 내 모습과 비슷해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게 된다.
아무것이나 주는 대로 잘먹던
큰아이와 달리
먹는 것이 적은 작은아이는
늘 애처롭게 다가온다.
그래도 아이를 호되게 야단치지 못한다.
그 작은 눈망울 속에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울어댔다는
내 어린시절처럼
작은아이도 말못하던 때부터도 자기주장이 있어서
도리질을 해대며 뭔가를 요구했지만
난 그걸 못알아들어 한참을 헤맸다.
그러면서
나를 키우실 때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더도 덜도 말고 꼭
너같은 딸 하나 낳아보아야
내속을 알것이라던 어머니 말씀이 아니어도
나는 아들을 보며 그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언니나 나는 딸이 없이
아들만 둘을 두었다.
엄마의 모계혈통은
우리대에 와서 끝났다.
나는 딸에게
내 엄마처럼 휴식같은
어머니로서의
따뜻한 잠을 줄 수 없다.
반듯하게 펴진
이부자리에
어깨까지 끌어올려 이불을 덮고
똑바로 누워야만 잠이 오던
까다로운 잠자리습관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여름에도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자는
딸의
잠자리를 돌보시던
내 어머니는
아침이면 말씀하시곤 했다.
땀흘리며 자길래
이불 좀 내려주려하면
손으로 꼭 붙잡고 이불을 안놓고 자더구나.
아침을 먹으며
나는 생각하곤 했다.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어머니가 다녀가셨구나.
이불과 베개에 집착하던
나는 이제 사십줄이 되어
내 나이 때 어머니가 하셨을 생각을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하게 된다.
큰아이의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고
작은아이의 자세를 다시 잡아주며
사십의 어머니가 하셨을
잠들 무렵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내게 딸은 없지만
내 어머니처럼
나도 우렁각시가 되고
휴식같은 어미가 되고
아이들의 잠자리 이불을 여며주는
따뜻한 울타리로서의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칠십줄에 들어선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어디 가나 눈에 띌 만큼
예쁘셨던 어머니가
이젠 주름지고 나이드신 모습으로
내 앞에 계셔도
여전히 젊고 예쁜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내게 휴식같은
우리 어머니
우렁각시
나도 또다른
우렁각시가 되어야한다고
말없이 나를
가르치시는
우리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