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친구에게
내일은 쉬는 날..
그래 오늘 저녁은 한잔하고 싶은 날이지. 아주 간절하게..
그러나
마음만큼 젊지않은 나이임을 쉽게 인정해버리는 데서
접을 수 있었단다.
목소리가 많이 피곤한 것 같았어.
나도 사실 피곤해.
며칠 동안 쉬기 위해 분주했으니까..ㅎㅎ
어제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냄새때문에 질식할 것만 같았지.
처음엔 젊은 남자가 내 옆에 앉았는데
그 남자의 체취가 아주 가깝게 느껴져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사람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아닌 각자가 지닌 냄새 같았는데
왜그렇게 역하게 느껴지던지 일어나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옆에 앉은 남자가 민망해할까봐 그냥 참았어.
책을 꺼내 읽었지.
책을 읽다가 보니 남자가 내려서 더이상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어.
집에 오는 길엔 아랍인 같은 사람들이 한무리나 타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내 옆에 외국인 중 한 명이 앉았는데 서양인에게 나는 노린내가 심하게 나서
토할 것 같았다.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나 맞은 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젠 유난하게 냄새에 민감하게 느껴진 날이었다.
웃기는 일이지.
내게서도 특유의 냄새가 나고 동양인 특유의 냄새가 날 텐데 말이지.
그러면서 생각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걸 보니 이젠
차를 가지고 다녀야 하나?
몇년 전부터 숙제로 안고 있는 면허를 취득할 때인가? 하고 말이지.
그래도 나는 친구와 내가 같은 냄새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 여겨본다.
역겹거나 토할 것 같이 참기 힘들면 같이 술마시자고
말을 꺼내는 사이는 아닐 거라 여겨지거든.
오늘은 다른 때보다 일찍 들어오며 장을 보았다.
내일은 휴일이니 아이들 먹이려고 고기를 사며 시장을 둘러보다보니
내가 잘 가는 만두가게 아저씨가 눈을 맞추며 인사해주신다.
나는 거기 멈추어 서서
아이들 간식으로 만두를 샀다.
냉동만두를 안사다 먹은지 꽤 되었다. 생각보다 냉동만두가 싸지도 않거니와
냉동실에 두고 바로 먹지 않게 되어 낭비도 되고 신선도도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장이 가까우니 바로바로 사다먹는 게 더 나을 것이란 나름대로의 소신이지만
급할 때는 냉동실을 열어 아무것도 대신할 것이 없음에 가끔 절망하기도 하지.
그래도.. 오늘은 술을 마실 생각은 별로 안했다.
집에 오며 맥주를 사지도 천국을 사지도
또 와인을 사지도 않았으니 말이야.
좀 괜찮은 와인을 사면 와인따개가 같이 들어 있곤 하지.
나는 늘 맥가이버칼에 들어 있는 코르크 따개로 와인의 코르크를 따서 마시곤 했는데
얼마전 언니가 자기 집에는 많다며 내게도 와인따개를 하나 주었단다.
그거 써봐야 하는데 오늘은 사다 놓은 와인도 없으니
다음에 장보다가 한병 사와야겠다.
음..맥주안주도 찾아보면 꽤 있는데..
요즘 아이들 과자를 트랜스지방과 화학조미료 때문에 안사다 먹이면서
옥수수 검은 콩 땅콩 건포도.. 또 무슨 인도네시아 열매인가 하는 것들을 먹이지...
큰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집에 와서 즐거움이 있으라고 나는 과자를 일주일치씩
사다 놓곤 했었어. 우리 착한 큰아들은 하루도 두개씩 먹은 날이 없단다.
하루에 꼭 한 봉지만 먹었지.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냉동실에 두고
집에 오면 하나씩 꺼내어 먹으라고 했었어,
엄마 없는 빈 집에 들어와 아이가 느낄 적막감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신발 벗는 현관에 작은 수첩에 쪽지를 써서 놓아두곤 했지.
늘 집에 오면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하고
어디를 놀러 나가도 전화해서 허락을 받곤 하지.
고맙고 착한 아들이다.
그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습관이지.
눈에 안보이는 아들을 그렇게라도 보아주자는 게 내 마음이지..
물론 내 속을 뒤집어 놓을 때도 많지만...
오늘은 큰아이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왔단다.
그게 그렇게 큰 이야기냐구?
내겐 그래..
개학하는 3월이 되면 머리를 자른다고 고집을 피워서 길게 자란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그냥
보아주며 참았거든.
늘 가는 단골 미용실에 가서 자르고 오라고 했더니 미용실 주인이 엄마의 잔소리를 익히 아는지라
알아서 아주 단정하게 잘라주셨더라.
녀석은 절망스런 목소리로 내게 하소연을 해왔지만
내 눈엔 녀석의 단정한 머리모양이 아주 멋져 보이고 인물도 훨씬 나아보였다.
남자아이들은 두상이 예쁘면 뒷모습이 참 멋지거든.
그 예쁜 뒤통수 만들어주려고
아이를 엎어서 재우기도 하고 짱구베개를 대주기도 했거든.
어릴 때 아이를 안고 나가면 사람들이 아이의 뒤통수가 참 예쁘다고 엄마가 공들여 만들어준
뒤통수라고 칭찬을 많이 해주곤 했는데
아들아이는 엄마의 그 공을 알까 몰라..
그에 비해 작은아이는 내 몸이 너무 안좋은 상태에서 몸조리를 하느라
뒤통수예쁘게 만들기는 신경도 못썼어.
아이들과 과일을 먹고
큰아이 영어단어 테스트하고 이제 자려고 한다.
오늘 못마신 술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모자란 잠 많이 자고 푹쉬는 저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냥 이얘기 저얘기 수다를 풀어놓고 싶었어..
어느날..
불현듯이 수다가 그리울 때
알콜의 취기에 피로를 풀고 싶어 질 때
한잔 하자..
술이든
우리의 늙어가는 넋두리이든...
늘어놓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