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이 저급해질수록
아니... 메마르고 윤기없어진다고 여길 때
나는 강박증처럼 책을 찾아
배고픈 아이처럼 책을 읽어댄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위로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습관처럼 굳어진 활자중독인지 모르지만
책에서 나누는 대화로 인해
스스로 존재감을 느낀다면 병증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인물과 만날 때면 그가 옛사람이어도 나는 반갑고 떨린다.
뛰어난 석학 김정희와 만나며
얼었던 심장이 뜨거워졌다.
난 글씨도 그림도 잘 모른다.
내가 읽은 것은 추사 김정희의 삶 가운데 느껴지는
인생의 편린들이다.
남부럽지 않은 명문가문에서 귀공자로 곱게 자라
출세가도를 달리고 거칠 것없이 공부하고 박식함을 유감없이 드러내다가
미움도 많이 받고 적도 많이 만들었다.
중년과 말년의 제주와 북청유배시절을 통해 김정희는 인격이 다듬어지고
예술세계에서도 원숙함과 관용을 기르게 된다.
그래서 유홍준 교수는 그의 말년의 과천시절을 완숙기로 평가하고 그때가 그의 예술세계가
완성된 시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죽기 3일전까지 절의 현판글씨를 쓸 정도로 그는 자신의 삶을 불태우며 살다간 것 같다.
책에 실린 묵향이
아주 오래도록 코끝에 스며와
예술가와
미술감식가로
천재성을 드날렸던
아름다운 영혼 김정희와의 만남을
겨우내내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최고의 지 필 묵을 고집하며 써내려간 수많은 글씨
연경에서부터 1400권이 넘는 책을 그옛날에 집요하게 구해다 읽어댄 독서열..
중국 최고의 지성인들과 깊은 교류를 통해서 넓혀간 학문과 예술에의 열정...
입고출신에 의해 자기만의 색을 찾아
대가를 이룬 삶을 통해서
현재의 나를 돌아다보게 되었다.
누구의 삶도
흉내내지 않고
나만의 색깔을 갖춘 드라마 한편을
멋지게 연출하며 살다 가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