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아는 이의 생일이 들어 있고
가족들모임이 잦고 챙겨야할 일들도 많다.
큰아이 중간고사가 있는 주간이었다.
4월 한달간 학원도 끊고 매일매일 야간자율학습을 학교에서 하고 돌아오면
간식을 먹이고 졸며 공부하는 녀석을 재우는 게 나의 일과였다..
그리고 우이천걷기를 시작했다.
스르르 늘어난 허리둘레에 기겁을 하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처음 며칠은 죽을 맛이더니
적응이 되니 덜 지치고 몸이 가벼워짐을 차차로 느낀다..
며칠은 둘째를 데리고 같이 걸었다.
저녁에 좀 일찍 오면 열 일을 제치고 작은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책읽기를 했었는데
그거 좀 안하면 어때? 같이 바람이나 쐬지 뭐.. 하는 배짱으로 아이와 걸었다.
돌아오면 선휘는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
그래도 이삼 년 전보다는 많이 커서 힘들다는 소리도 덜하고 제법 잘 걷는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는가보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돌아와
동네 한바퀴돌며 이것저것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고
세이브존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큰아이 티셔츠를 몇 개 사주고 남방셔츠도 하나 사주었다.
어리어리한 우리 둘째는 제 옷은 하나도 안샀는데도 아무 욕심도 안부리고 졸졸 따라다닌다.
아참.. 선휘 소풍갈 때 사용할 베낭을 하나 사야지..하고 생각이 나서 지나나가 그걸 사고
운동다닐 때 신을 운동화를 사려고 신발코너에 들렀다가
할인한 값도 비싸서 내 운동화는 만지작거리다가 못사고 나왔다.
그게 부모마음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내 부모도 자식들것 챙기시다가 정작 당신들것은 포기하셨을지도 몰라..그게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이란 걸 아이를 십 몇 년 키우고 깨닫는다.. 아둔하기도 하지..
큰아이는 제옷을 사주러 나갔는데도 짐들고 다니는 게 힘들다고 투덜거리고
동생이 점잖게 안걷는다고 사이사이 구박하느라 퉁퉁 부어 있었다.
내가 큰아이를 그렇게 닦달하며 키웠나 새삼 반성이 일었다.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예의가 없는 사람은 질색이거든..공공장소에선 다른 사람이 불편하게 느낄 행동은 안하는 것이지.. 하고 무언의 암시를 많이 주었던가 잔소리를 많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 좀 해라... 엄마가 있을 때는 엄마가 알아서 혼낸다.. 하고 말했지만
큰아이눈에 엄마는 동생에게 지나치게 후하다는 불만만 가득해 있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떼를 쓰며 울어대는 어린아이를 보았었다.
맘좋은 아빠는 그걸 만류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엄마가 아이를 붙잡고 혼을 내고 있었지만
아이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사람들 많은 데서 엄마에게 돼지똥개라고 응수해댔다.
좀 시끄러웠다.
처음엔 가라앉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내가 내릴 때까지 30분간 그치지 않았다.
속으로 부모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나같으면
당장 데리고 내려서
아이를 잡아놓을 텐데 내리지도 않고 아이를 제압하지도 못하면서
여러사람에게 시끄럽게 피해를 끼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이 할머니할아버지처럼 타일러도 되련만
그냥 바라만보고 있었다.
좀 시끄럽긴 해도 남의 일에 나서지 않는
개인주의의 일면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작은아이는 그렇게 요란한 것도 아닌데
큰아이는 사사건건 똑바로 걸어라 다른 사람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라..
잔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나중엔
그만 하라구..
너 먼저 집에 가..
같이 쇼핑 못하겠구나.. 거의다가 네옷을 사러 나왔는데
좀 참아라...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의 표정을 살핀 큰아이가
수그러든다.. 참을 게요...
모처럼 시간내서 나온 나는 이것저것 둘러보느라 바빴지만
우리아인 딸아이가 아닌 아들아이라
보통의 남자들이 지루해하듯이 귀찮은 표정을 역력히 보였다.
그래서...서둘러
나와버렸다.. 내가 다시는 너를 데리고 쇼핑을 하러오나 봐라..벼르면서...
저녁을 먹고 집에 오니
사온 옷들을 꺼내놓고 입어보느라 바쁘다..
그걸 보니 또 아직은 아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사춘기인데도 엄마에게 한번도 옷타령 신발타령을 안하며
크는 착한 아들인데 그걸 너무 당연시하고 야단만 쳤구나...
신발이 구멍이 날 때까지 밑창이 떨어질 때까지 뭘 사달란 소릴 안하는
착한 아들인데..
엄마가 사다주는 옷을 아무 말 안하고 입어주는
착한 아들인데 말이야...
나는 엄마가 사다주는 옷을 잔소리는 안했지만 잘 안입었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데리고 같이 가 사주시거나
내가 골라 사 입으라고 돈을 주시기도 했었다.
거기 비하면 우리 아들은 착한 편인데
못마땅해서 야단만 쳤네...
선휘는 오늘 제몫으로 사온 소풍베낭을 만지작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나도 오늘 아이보리 가방 하나를 샀다.
그걸 이리저리 둘러본다..아무도 내게 뭘 안해주니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돈 많이 쓰고 돌아다닌 하루...
아이들은 끝났는데
어머니에겐 뭘 해드리나?
점심 맛있는 것 사드리고
현금 드려야지... 그걸 제일 좋아하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