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좋아하는 오솔길이다.
길의 끝에는 작은 나무의자가 있는데 한여름엔 거기 앉아서 준비해간 물을 마시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아이와 과일을 먹고 내려오기도 한다.
오후무렵 아들아이와 걷던 길이
디카 한쪽에 오롯이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처럼 기억은 우리를 화면 속에 가두고 있는 작업이 아닐까?
크리스마스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하느라 연습한 성가대식구들과 의정부 어디쯤으로 밥을 먹으러 나간 길에
아들아이가 포즈를 잡아주었다. 젊은 부부들의 아이들도 같이 갔는데 조용한 식당에서 뛰고 떠들고 난리였다.
나는 민폐끼치는 것을 기질적으로 싫어한다.
아예 식당에 동석해 데리고 가지 않든지 데리고 가면 아이를 철저히 단속해서
공공장소에서 소란피우는 것을 아예 차단했는데 요즘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떠들어도 별 상관 안하고 부부들끼리 테이블에 앉아 수다에 여념이 없었다.
밥을 먹을 때도 사이사이 부모가 끼어 앉아 아이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지만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초등 저학년과 유치원학령의 아이들끼리만 앉게 하여 밥먹는 것을 별로 챙기지 않아 소란스러웠다..
아직 자율을 익힐 나이에는 부족한데 아이들을 너무나 과감히 믿어주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너무도 소심증에 지나치게 예민한 것일까?
우리 아이는 한쪽 구석에 따로 앉혀 아주 조용히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테라스에 나가 돌아다니고 레스토랑의 정원을 돌아다녔다.
새해 첫날
점심때쯤 아이들과 언니네 부부와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코스로 다니느라 인파는 적었다.
준비해간 사과와 커피를 마시고 중간중간 쉬어가며 산책같은 산행을
새해 첫날 두아들과 함께 했다.
선휘가 갑자기 바위에 누우려고 했다.
조금 요염한 포즈 ㅎㅎ
코끝이 알싸하게 매운 겨울의 찬 공기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선연한 겨울하늘의 싸한 파란빛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좋아한다.
어쩌면 짙푸른 동해바다처럼 보이는 파아란 바다..바다..
그것은 바다의 다른 이름
하늘이다.
12월의 마지막날 교회선생님과 고려대학교 교정에 다녀오더니
그학교가 갑자기 좋아졌단다.
공부 열심히 해서 들어간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대도 상관없다.
아이가 흘린 땀만큼 결실을 정직하게 거두길 바라고
그 과정에서 지치거나 절망하지 않기만 기도한다.
방학이라 좀 일찍 집에 돌아오면
한두 시간 잠을 잔다.
그리고 겨우 일어나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시간나면 우이천에 걷기도 하러 다녔다.
월요일부터 학교보충에 다녀야하는 큰아이가 며칠간 집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밤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까르르 웃기도 하고
작은아이 손을 잡고 그 작은 손의 온기도 나누고
내키보다 부쩍 커버린 큰아이와 나란히
저녁 산책을 하며
2009년의 낯설음에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다..
산의 구릉은 성품을 닮아 있다. 완만하고 유려한 곡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같이 산을 닮아 차분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넉넉해지는 품성을 닮아간다고 나는 믿는다.
이 산의 완만한 곡선을 바라보고 성장한
산골 아이들이 순박한 것은 순전히 산의 이 유려한 곡선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싶어한다.
산처럼
나도 둥글고
넉넉해지길
새해 벽두에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