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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퀼트이야기5

신년이 되면

다같이 대청소를 하고 철지난 참고서며 책더미들을 끈으로 묶어 내놓고

그리고는 가족이 모두 대중탕을 다녀왔다.

얼굴이 발갛게 때를 밀고 들어와

다가오는 새해를 맞았으며

티비의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12시를 넘기고 앉아있다가 잠들곤 했다.

 

그리고 1월 1일이 되면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늦잠을 자지 못했으며 일찍 일어나 새해 첫날을 맞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의식도 희미해져가고 누가 뭐라고 야단치는 사람도 없으므로

굳이 세밑에 청소를 하며 보내지는 않는다.

 

그래도 2010년을 맞으며 며칠을 지내다보니 집안이 너무 정신없어서

오래된 종이뭉치들을 한아름 버렸으며

책꽂이 한칸을 비우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작은아이의 동화책을 가지런히 꽂아주었다.

 

그리고...

집을 치우다보니 아주 오래된 나의 퀼트가방이 보였다.

꽃무늬 가방이었는데 오래 되어 그 안에 들어간 알루미늄 휠을 감싼 바이어스천이 다 닳았고 바닥은 솜이 비어져 나오고

가죽끈은 처음부터 불량을 구입한 탓인지 갈라져버려 안들고 다닌지 2~3년은 되었다.

 

작은아이 낳고 기저귀가방으로 넉넉하게 만들어 들고 다녔지만 기저귀 안넣고도 곧잘 오래도록 들고다닌 가방이다.

그게 낡았어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바느질한 것을 해체해서 천을 손세탁했다.

 

그리고는 좌악 펼쳐놓고 그보다 작은사이즈의 가방본을 대고 오려내었다.

 

 

 이미 솜대고 안감과 퀼팅은 되어 있는 것이니 오려서 이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마무리로 바이어스처리를 하였으나

 지퍼도 달아야 하고 손잡이도 달아야 한다.  지퍼와 손잡이는 날이 좀 풀리면 동대문상가에 나가서 사올 작정이다.

 

  그리하여 작은가방이 하나 또 생겼다.

 

 오른쪽것도 가방이었는데  이것도 오래 들고 다녔더니 바닥부분의 솜이 비어져 나와 오래된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가방에 달았던 가죽손잡이는 떼어내서 다른 가방에 이어붙였는데 내 가방이 무거운 탓인지 가죽도 이젠 삭아서 끊어졌다.

가방은 바닥의 닳은 부분만 잘라내고 바이어스처리를 하여 쿠션커버로 변신..

책읽을 때마다 이 쿠션을 베고 누워 책읽기를 한다.

 아주 오래 전 내 대학 친구가 집에 오면서

 은행에서 나온 주방장갑을 두개 가져다 주었는데 그게 주방장갑이다보니 그 본분을 다하느라 불에 그슬리고 타서 생명을 다하게 되어

 새로 만드느라 그 장갑을  우유팩에 본을 떠 두었었다. 그때 만들고는 본을 내 클리어파일 안에 고이 모셔두었는데

 다시 그걸 꺼내어 본을 뜨고 스트라이프로 장갑을 만들었다.

 

 앞면 뒷면을 모두 솜으로 누볐으니 바이어스를 댈 때 두꺼워서 손가락이 좀 아프긴 했다.

 마트에 장보러 갔을 때

 뭘 사다가 사은품으로 받아온 오른쪽의 주방장갑이 생명이  다했으니 새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다.

 다 만든 것을 본 우리집 큰아들

 주방장갑이 너무 럭셔리한 것 아니에요? ㅎㅎ

오래 지방에 내려가 살던 대학친구가 서울로 오게 되어

그친구네 이사한 집에 갈 때 선물로 액자를 하나 만들어주었다. 그때 한꺼번에 두 개를 오려두었다가 나중에 내것도 하나 완성했으니

그것이 지금 위의 액자이다.

 다니던 교회에서 같이 주일학교교사를 하시던 집사님이 복층 주상복합의 어마어마한 넓은 집으로 이사하셨을 때 그집에 집들이가며 선물한 아플리케 액자.. 이것도 두 개 오려두었다가 내것도 나중에 완성하였다.

집 정리하다가 19년전 2월에 찍은 사진이 발견되어 작은아들과 함께 액자에 같이 끼워넣었다.

 

 사진 속의 보라색 가디건은 지금도 지니고 있다.

 

친구네 집에 리폼기념 집들이를 가면서 선물한 리스벽걸이.. 이것도 하나 더 오려두었다가 내것은 레이스를 넣어 완성했는데 레이스바느질하느라 고생한 기억..

 

공주가 아닌데도 고운 핑크색을 보면 설렌다. 요건 우리집 전신거울에 달려 거울보는 우리집 식구들의 표정을 매일 살펴준다.

 

스스로에게도 환영한다는 인사를 하며..

 

2010년을 다지는 각오는 없다.

 

올해 고3이 되는 큰아이가 힘들지 않도록 먹을 것을 열심히 사나르고

틈나면 그 아이 옆에서 엄마도 바느질을 하며

그렇게 아들의 고3을 같이 견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