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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6월2일

 쉬는 날이라 어느곳도 도서관이 문을 안연다고 큰아이가 오늘은 집에서 공부를 한다.

 처음엔 작은아이 데리고 근처 산에라도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집에서 공부하는 큰아이에게 밥을 챙겨주려면 그냥 집에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늦은 아침을 먹이고 집 앞 산에 작은아이와 산책삼아 올랐다.

 5월의 아카시아향기가 그리 코를 찔러댔는데도 정작

 산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이제 6월이라

 꽃은 모두 져서

 이처럼 꽃길을 이루었다.

 

10분이면 정상에 도달할 정도로 얕은 산이지만

대신 넓게 퍼져 있어 코스를 잘 잡으면 여섯시간도 산행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내겐 늘 30분짜리 단기코스이거나 한 시간이 고작이다.

 

 

 그래도 오늘은 아들아이를 꼬드겨 제법 멀리도 가보고

 평소와 달리 다른 코스로 돌아다녔다.

 말이 산이지 올라가서는 평지라 그냥 산책길 같다.

 작년가을부터 겨울까지 부산하게 뚝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산책로 초입에 운동기구도 새로 들여놓고

 이처럼 안내문까지 등장했다.

 나도 유리에 비치는 내모습을 잡아보았다. ㅎㅎ

 마지막코스.. 생태육교 위에서 바라본 정경이다.

 

 이리로는 사람이 건너다니고

 철망 옆으로는 야생동물통로라고 만들어놓은 모양이지만

 야생동물이 정말 지나다니긴 하는 것일까?

 

 

 이길로 내려와 집에 돌아오니

 친정어머니가 와 계셨다.

 

 혼자서 라면이나 삶아드시려고 했다는 점심을...

 국수삶아서 아들들이랑 엄마랑 함께 먹었다.

 

 큰아이가 비빔국수가 먹고싶다고 해서

 있는 야채 좀 채썰고

 달걀지단도 부치고 김도 구워서 고명으로 얹어주니

 평소 초간단 국수에 비해 너무 럭셔리한 탓인지

 큰아이가 묻는다.

 어? 고명이 너무 많은걸요?

 ㅎㅎ 그거야 할머니도 드시라고 좀 성의있게 한 거지...

 

 큰아이는 만들어둔 초고추장에 국수를 비벼먹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만든 다시국물에 말아먹었다.

 대파와 다시마 멸치 그리고 북어를 넣고 우려낸 국물에 소금간을 하고 국수를 말아 김치와 같이 먹으면

 내입에는 제일 맛있는 국수가 된다.

 아! 참기름 한방울과 깨소금을 얹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고소하니까..

 

 엄마가 보고싶어 엄마에게 간 적은 한번도 없는 것같고

 늘 엄마가 만들어두신 김치가지러 가거나 밑반찬 얻으러 친정에 다녀오곤 했던 것같다.

 지금도 칠십 넘은 엄마가 사십 넘은 딸에게 김치를 담가주신다.

 

 넌 좀 다르게 살아라.

 김치같은 건 안담그고 살아도 좋으니 유능하고 당차게 살아가거라.. 하고 보내신 무언의 격려는 아니었을까?

 

 이제 나이들어 주글해지신 엄마의 주름과

 거친 엄마의 손을 보며

 오늘은

 엄마가 늘 타박해 마지않는 솜씨없는

 딸이 끓여드린 국수를

 아무 타박없이 그냥 드신다.

 

 엄마랑 맛있는 점심먹으러 한번 다녀와야겠다.

 엄마딸 힘들게 한다고 야단치시는 엄마손주들 떼어놓고

 엄마의 딸하고만 둘이 맛있는 밥먹으러 한번 다녀와야겠다.

 

 휴일오후는 그런각오를 다지며

 느리게느리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