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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청구회 추억

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지 않았다.

그책에 나오는 청구회에 관한 이야기가 독립되어

영문번역까지 겻들인 그림책으로 구성되었다.

도서관에 책 바꾸러 갔다가 서가에 꽂히기 이전인 이책을

그림책으로 보고 서서 휙휙 읽다가 시간이 촉박해서

다 못읽고 대출해왔다.

신영복 교수가 숙대 교수로 있을 당시

서오릉으로 지인들과 소풍을 가다가 만난 어린아이들을

이후 관계를 갖고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이야기였다.

이들과 같이 놀아주고

책을 주어 독서를 하게 하고

자립심을 키우도록 작은 돈을 저축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읽었다.

이후 저자가 감옥에 가기 전까지 몇년 동안 지속된 이야기였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을 그린 작품인데 반납하기 전에 기억해둔다고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작품제목이 잘렸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면서 그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서오릉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나중에 보내주마고 약속하였는데

그중의 한 초등학생이 학교로 보낸 편지이다.

사진을 찍었던 사람에게 알아보니 필름이 망가져 사진은 전달해줄 수 없게 되었고

그 미안한 마음을 장충체육관에서 만나 노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들의 만남은 이어졌고

그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이름을 따서 청구회라 지었다 한다.

 

가난해서 중학교 진학도 어려운 이들에게

저자가 해 준 것은

야간학교를 다니거나 검정고시를 해서라도 학업을 지속하라는 격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며  그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이며

어찌 성장했을지는 모른다고 하였다.

저자가 투옥되면서 이들과의 만남도 끝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도록 남아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것을 기록으로까지 남긴 이유는

아마도 부채감이 아닐런지?

 

나는 오늘 되돌아본다.

어떤 부채감을 지니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빛나게 하거나

더 나은 것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멀리보지 않더라도

내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반성을 한다.

부자는 분명 아니지만

교육을 받았다는 건

혜택받은 소수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