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묘한 상실감, 슬픔을 느꼈다.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겨우 아침을 함께 보낸 주제에 사랑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낭만적 미망과 의미론적 우둔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26쪽
클로이와 내가 우리의 차이 가운데 일부를 넘어설 수 있었다면 그것은 서로의 성격에서 발견되는 막다른 골목을 가지고 농담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중략...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적어도 사랑의 90퍼센트를 이루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유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97쪽
"너를 이런 식으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아. 네가 이것을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놓여. 내가 너한테 꺼지라고 말하면 너는 나한테 뭘 집어던지기는 하지만 떠나지는 않거든. 그게 안심이 돼"183쪽
상대방에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게 되었냐고 묻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한다. 개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어떤 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속성이나 특질을 넘어선 존재론 적 지위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다. 사랑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부유함 속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애정/소유를 얻고 유지하는 수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지켜야 한다. 사랑에서건 돈에서건 오직 빈곤만이 체제에 의문을 품게 한다. 그래서 아마 연인들은 위대한 혁명가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190쪽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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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를 가진 저자의 고급스런 문장은 읽으면서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일상어와 다른 읽는 언어를 통해
평소의 저급하고 무의미한 언어생활은 좀더 순화되거나 높아지는 느낌이다.
스토리의 전개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철학적 사유로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 때문에 딱딱하지 않게 잘 읽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네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고백을 듣고 싶다. 바트 재치나 재능은 물론이고 아름다움도 지니지 못했으며 수표책도 없으니
참 절망스럽긴 하다. 하지만 비교나 평가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해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이므로 서글프지는 않다.
나의 나다움은 유일하게 나밖에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