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여진 구도의 그림을 감상한 느낌이다.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았다.
주연배우로 송강호가 나온다는 것 정도..유명 영화감독의 영화라는 정도...
영화의 처음과 마무리에 지하방.. 천장에 걸린 양말 몇켤레가 등장한다.
지하방 창을 통해 보이는 물방울이 잠깐동안 빛나는 보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동화적 장치도 아니고 아릿한 연민 같은 정도..
부끄러운 일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한번도 반지하에 살아보진 않아서 그 퀴퀴한 느낌과 곰팡내 같은 것을 이해하진 못한다.
그냥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러려니 짐작일 뿐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상징을 빌어 이야기할 뿐.. 지나치게 리얼리티를 살려 까발리지는 않는다고 여겼다.
부자들의 위선과 여유..
가난한 자들의 비굴함과 살아가는 영악함..
그 공간은 그림같이 예쁜 대저택과
냄새나는 지하공간으로 대비된다.
가진 자의 여유는 넉넉하기 때문에 배어나오는지도 모르지만
영화에서 부자가 그리 밉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아하게 고용인을 해고한다든지
신분이 천한 것을 냄새로 지적하는 것 등에서 세련된 무시가 돋보인다. 이것이 아마도 감독이 나름 상징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르스 부호의 장치
대저택과 지하실의 대비
그리고... 불이 켜지면 흩어지는 바퀴벌레처럼 사라지는 존재들로 비유된..
도시빈민과 하층민의 삶이 가장 크게 각인되었다..
언젠가 한강을 건너다니며 젊은 날과 나이든 날의 내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은 강남에 사는 사람들로 인해
내가 먹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조 같은 것을 한 적이 있었다.
그처럼 여유있게 사는 자들에게 필요한 노동력이
가정부.. 과외선생.. 운전기사.. 등 한 집안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노동인력들이..어떻게 채워지는 가를 보는 것은
의미심장했다.
경제력의 상징으로 필요해지는 노동력이
다른 집안 식구들의 조합으로 짜여진다는 것도 감독의 세련된 대비이고 장치였다..
또 하나 영화의 묘미는 중반부분의 전혀 몰랐던 반전..
놀라움과 스릴러.. 그리고.. 조롱에 대한 복수.. 그런 것들로 구성된다.
반전은.. 볼 사람들의 스포이므로 밝히지 않는다.
우리에게 삶은 공생이 되어야지 기생이 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한쪽의 나머지와 부스러기를 먹고 기생하는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부조리.. 그것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다.
아직도 지하에서 숨 죽이고 살아가는 기생충들에게 주는 메세지...
목숨을 부지하고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밝은 땅에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영화속 화자는 말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가능한 것인지...
그냥 절망하며 영화를 보고 나왔다.
영화적 울림은 모든 절망에 주는 메세지일 것이다.
그 절망에서 출발해야하는 화두...
기생과 공생에 대한 화두...
송강호의 대사가 가슴을 친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란 무계획이다..
계획하면 실패할 수 있지만 무계획은 실패할 일이 없다..
그래서 아무 계획도 없다는 절망적 결론
무계획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