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물상자

나도 솔직히 돈이 좋다

며칠 동안 오숙희의 나는 솔직히 돈이 좋다를 읽었다.
소탈하게 생긴 그녀의 입담을 즐겁게 들으며 돈에 대해 며칠간 같이 생각했다.

나는 돈을 경멸하지도 숭배하지도 않지만 적당히 쓸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아니 그만큼은 벌어야 한다고 여긴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 능력보다 내가 돈버는 액수가 늘 모자란다고 여기는 오만함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늘 돈이 모자란다.

버는 만큼 쓰는 자족함도 안다.
그래도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그 불안한 심리는 어쩔 수가 없다.

있으면서 안쓰는 것은 근검이고 절약이지만 없어서 못쓰는 건 궁상이고 부족함이다.

그래도 돈이 돌고 돈다는 이치처럼 내가 다른이에게 정으로 흘린 돈이 또 돌아서 내게 오기도 하고 다른이에게 신세진 돈이 흘러서 다시 갚을 날도 오지 않을 까 하고 소박하게 살기로 한다.

재테크에 대한 명료한 해석이 없어도 오숙희의 돈에 대한 철학은 참으로 따스하다.

지갑에 동전을 가득 넣어다니며 그녀의 말을 떠올린다. 동전같은 부스러기 돈이 큰돈 허무는 것을 막아주고 그게 모여서 티끌이 된다는 그녀의 지론을 떠올리며 동전을 모아 모처럼 점심을 사먹고 동전소비용으로 10원짜리 동전을 넣어 공중전화를 했다.

핸드폰을 들고 다닌지 얼마나 됐는지 나는 오늘에야 공중전화가 70원으로 올랐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꼽아본다.

계획성있게 지출하는 만큼 돈도 그렇게 벌어야 할테고
또 모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나도 솔직히 돈이 좋다.
수세식 화장실처럼 관리해야 한다는 돈.

배설을 위해 가까이 있어야 하고 청소도 깔끔하게 해둬야 관리하기에 또 드나들기에 좋은 화장실처럼 가까이 냄새나지 않는 정직한 돈을 벌어 깔끔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보물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금요일  (0) 2003.05.07
어떤 아줌마의 아들양육기  (0) 2003.05.07
노래방  (0) 2003.04.13
참 오래 살았군  (0) 2003.03.16
토요일의 일과  (0) 200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