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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상자

매니큐어에 대한 또 다른 관심

특별하게 치장하는 걸 즐기지도 않지만 금욕주의자처럼 아무것도 하고 다니지 않는 건 아니라 가끔은 새로운 관심을 갖기도 한다.

한두달 전 집에 오다가 1000원에 두개하는 매니큐어를 사들고 와서 심심한 저녁이면 발랐다 지웠다를 연발하며 아직은 세살인 작은아들의 발톱이며 손톱에도 장난스레 매니큐어를 칠해주었다.

며칠 지나니 자연스레 지워졌고 나는 리무버로 지운 채 다시 예전의 민손톱으로 또 돌아왔다.

요즘 나는 8개월 만에 긴 휴가를 즐긴다.

그게 일주일에 불과해도 내겐 천금같은 기간이다.

어젠 중계동에 있는 2001 아웃렛에 갔다가 아들아이들 옷가지 몇개와 함께 100원밖에 안하는 매니큐어를 5개나 사들고 왔다.

저녁에 희희낙락 웃어대는 내게 아들놈이 얄궂은 표정을 짓길래 이게 모두 500원이라고 했더니 눈이 커진다.

금색 은색 초록의 매니큐어를 대담하게 발라보고 지우고 하다가 이번에도 작은놈 손톱과 발톱에 그걸 발라주니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침 설거지를 하고 나오니 내 손톱은 또 약간 벗겨졌다. 게을러서 손많이 가는 매니큐어는 절대 사절이던 내가 매니큐어를 바르는 기쁨을 누린다.

생활의 변화가 이렇게 단돈 500원에 충만하게 차오를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누리며 오늘 밤에 초록색을 칠해볼 생각을 한다.

지저분하게 벗겨질 때면 지우면 그만이고 내 손이 소화 못하면 지우면 된다는 자유로움에 그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봉숭아 꽃물보다 편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시간이 오래 가야 겨우 꽃물이 드는 봉숭아 꽃물이 꼭 진득한 사랑만 같아서 왠지 내 매니큐어에 대한 관심에 스스로 미안해 진다.

마치 인스탄트사랑만 같아서...

그래도 붉은 선홍의 봉숭아 꽃물만큼이나
지금의 내 은빛손톱이 색다르고 예뻐보이는 걸 어쩔 수가 없다.

그게 인스탄트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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