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서 웅크리고 다닌 날이 더 많아서인지 봄이 오는지도 몰랐다.
문득 눈을 들어보니
길가에 개나리도 보이고 목련이 올라오는 것도 보인다.
일주일의 피로가 몰려드는 일요일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
어제 사다 놓은 맥주를 마실까 하다가 속이 아픈 듯 느껴져 마시지 않는다.
피곤하다.
큰놈은 내일 학교에서 수련회를 간다고 한다.
낮에 준비물을 챙기고
저녁에 다시한번 물어보니 거의 챙긴 모양이다.
가서 피로를 풀고 잘 놀다오면 좋겠다.
살기 좋아졌는지 요즘은 소풍이 없다.
소풍대신 2박3일간의 수련회가 언제부터인지 자리잡았다.
다녀오면 곧 중간고사준비로 바빠질 것이다.
지난주에 너무 화가 나서
아들놈이 다니는 영어학원에 안보내고 며칠 지켜보니
내속만 끓어대고 녀석은 천하태평이었다.
영어선생님과 긴 통화를 끝내고 비상체제로 돌입했다.
마침 녀석의 교통카드가 충전이 필요한 시기가 되어서
나는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충전을 안해줄테니 걸어서 학교가라고 했다.
첫날은 걸어서 학교에 갔고
둘째날부터는 숙제를 기가막히게 해놓았다.
이번주 차비와 수련회에 가져갈 비상금을 챙기니
녀석이 가져갈 돈보다 더주게 되어 나는 외상장부를 적으라고 했다.
다녀와서 공부해서 갚으라고 했다.
갚지 않을 경우 매일매일 회초리로 20대를 맞기로 했다.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항의하는 녀석에게
하면되지 맞을 생각을 왜하냐고 했더니 마지못해 수락한다.
다른집 아들들은 어찌 키우는지
아들 키우기 정말 어려워...
스스로 배고프게 여기고 찾아먹는 공부를 언제쯤 하려는지?
그 사이 내 멀쩡한 위장은
아마도 병이 날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순절 기간..
아들을 일찍 깨워 새벽기도에 데리고 다니는 게 더 현명한 처사처럼 느껴지면서도
나는 아직은 시작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일의 근원은
녀석을 지극히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
차려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