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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    목 :[추억] 고향
게 시 자 :sj0908         게시번호 :3781
게 시 일 :98/12/10 01:02:37      수 정 일 :98/12/11 10:04:56
크    기 :3.5K                   조회횟수 :31

 아버지 산소에 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섰다.
 친정에서 오빠가 렌트해온 봉고차를 타고 익산으로 향했다.

 강경을 지나가면서 아버지의 고교 강경상고를 떠올렸다.
 호남의 들판은 가을걷이가 끝나 볏단만이 규칙적으로 묶여 있었다.

 발인날 저녁 나의 리사이틀얘기를 하며 웃었다.
 나는 9시 30분까지만 기억나는데 1시가 넘어 잤다고 한다.

 부끄러웠다.
 정신을 놓을 만큼 술을 마신 것도 부끄러웠고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내 행동도 부끄러웠다.

 아버지 산소의 떼는 이쁘게 입혀 있었다.
 송편을 해가는 게 딸의 몫이라는 풍습에 따라 송편을 해갔다.
 그것을 해야 잘산다는 기복이나 미신을 믿어서는 아니었다.
 그것이 딸의 몫이라면 기꺼이 해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아들아이는 그 옆의 고구마밭에서 수확이 끝난 후의 고구마를
 재미있게 캐고 있었다.

 아버지의 산소 위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가 있었다.
 예전 우리집의 과수원 한 켠에 있었던 두 분의 산소를 과수원을 팔면서
 선산으로 이장했는데 그곳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무덤은 참나무로 만든 가묘라 한다.
 빈 무덤인 것이다. 집에서 나가신 날을 기준으로 아버지께서는
 제사를 모셔왔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돌아가셨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하게 되리라.

 아버지의 빈 무덤을 지키던 내 아버님의 한이 어떠했을지만 기억할 뿐이다.

 삼우제를 마치고
 일가 친척의 집을 몇집 방문하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내 생가가 있던 곳에 가서
 지금은 남의 집이 되어버린 우리의 옛집을 구경했다.

 뒤켠에 석류나무가 있었던 기억과
 대청마루와 아버지의 책들만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사용하셨던 나무책상을 기억한다.
 그 책상은 언니가 중학교 때까지 썼다.
 한곳에 오래 정착해 살았다면 아버지의 책도 모두 있을 것이고
 그 책상도 모두 고스란히 있을 터인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지으셨다는 옛집은
 당시 마을에 몇 안되는 기와집이었다지.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걸 보면 잘 지어진 집이었나보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다시 갈 일이 없던 고향이었다.

 오빠 둘은 병원에서 태어났고
 언니와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났다.

 마을엔 지금도 내 이름자를 지어주신 아버지의 친구분께서 생존해 계신다.

 어느 아주머니께서는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내가 어려서 엄지손가락을 그리 빨았다고 말씀해주셨다.
 아들 선재가 엄지손가락을 그리 빨았었는데
 그것도 대물림이었나?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과수원으로 향하던 길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말년에 살고 싶어하던 땅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내가 태어나던 해쯤에
 배나무를 몇백그루 사다 심었었다.

 그 과수원은 내가 대학 3학년때 팔고 말았다.
 아버지는 돌아갈 고향의 땅을 잃어버려서 얼마나 상심하셨을까?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나 내가 5~6세 때쯤 서울로 이사왔으니 내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언니 오빠들은 할 얘기가 많았는지
 나는 잘모르는 기억들을 더듬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버지의 고향이 아버지를 따스히
 맞아들이고 있어서 난 마음이 훈훈했다.

 당신의 태를 묻은 땅에
 어머니 아버지의 곁에
 당신을 끔찍히 사랑하셨던 부모님 곁에서 너른 들판을 보고 계실 것이다.

 내게 따스한 위로를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때문에 꼭 이루고 싶었던
 많은 희망들이 이제는 부질없어진 것이 제 가슴을 칠 뿐입니다.

 아버지의 부음을 알리기 위해 주소와 전화번호를 찾다가
 86년의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였지요.
 뒷부분의 주소만 떼어내고 일기장은 제가 챙겨 왔습니다.
 

 가끔씩 아버지가 그리워질 때
 그 일기장을 펼쳐보며
 아버지의 꼼꼼함에 진저리를 칠 지도 모릅니다.
 고집스런 아버지의 글씨를 보며 목이 메어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자랑스러워하시는 딸의 모습으로
 의연하게 살아야겠지요.

 그것이 제 길이니까요.
 여러분의 위로가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