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엔 밤새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아침이 되니
이제 제법 가을날처럼 쌀쌀한 공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단절된 벽을 느낍니다.
아무리 외쳐도 가닿지 못할 곳에
그대는 가 서 있고
저는 혼자서 울림없는 메아리를 허공에 날려보냅니다.
그것이
그대와 나의 닿을 수 없는 거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 외투가 제법 그 기능를 다할 만큼
추워진 날씨를 체감합니다.
짧은 며칠간만 겨우 입을 수 있는 버버리코트도 꺼내고
기분전환 삼아 걸칠 수 있는 가죽재킷도 꺼내볼 참입니다.
이 계절에
그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운 좋으면
기분이 같이 맞는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할지도 모르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월의 며칠간
그것은 요원한 일이 될 수도 있지요.
오늘은 가까운 주류백화점에 들러
와인 한 병이라도 사다 놓을까 합니다.
정 마시고 싶으면
혼자라도 마실 만 하더라구요.
안주가 없어도 되고
그리 독하지도 않고
은근히 취기가 올라
알맞은 기분에 잠들기도 괜찮더라구요.
물론 소주값의 열배가 넘는다는 것을 잘 알아요.
하지만
저는 이제 나이먹었고
그 정도 사치쯤은 부리고 살아도 된다고
혼자서 우겨봅니다.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와인 한 병 사마실 만큼은 번다고 여기니까요.
그리고 제가 낮이고 밤이고 마셔대는 것도 아니니
그 정도야 어떠냐고 혼자서 합리화를 시킵니다.
이글을 쓰는 지금 이곳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합니다.
바람을 느끼고 싶어 잠시 문을 열어놓았더니
너무나 세찬 바람이 문을 열어제끼고 말 만큼
바람도 비와 함께 세찬 기운을 몰고 옵니다.
오늘은 임시저장함을 열어
보내지 못한 메일을 삭제할까 합니다.
예전 제 책상서랍에는
밤새 써놓고 아침이면
보내지 못한 편지들이 그득히 쌓이곤 했지요.
일년쯤 지나면 그것을 정리하다가
그때 그밤의 정서가 살아나
혼자서 아파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사춘기가 되어가는지
보내지 못한 메일들이 쌓여갑니다.
수신인을 알 수 없는 메일이 쌓여갑니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소식처럼
쌓여갑니다.
낙엽이 바람불면 흩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제 그리움도 흩어질 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들 것을 아니까요.
가을 국화를 보면 한다발 들여놓을까 해요.
얼마남지 않은 시월에
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될 테니까요.
바람불고 비오는 시월의 아침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보내지 못할
서랍 속의 편지를...
가 닿지 못할 그리움인 것을 알면서도
또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을이 저를 너무 취하게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