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술집에 갔다.
일본식 선술집 같은 곳인가본데
밝고 깔끔해서 좋았다.
꼬치구이와
데운 일본청주를 마시고
오랜만에 친구와 수다도 좀 떨었다.
어제의 기쁨 하나
호텔로비에 편안히 앉아서 책보며
친구를 기다렸다.
약속장소는 백화점 앞이었는데 문을 닫아서
그 앞이 캄캄해서 거기서 기다리기란
좀 망설여져서
위풍당당하게 호텔에 들어가서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일본식 술집은 그리 조용하진 않았으나
배부르지 않은 안주에 적당히 술을 마시기에 좋았다.
자리를 옮겨 맥주한잔을 더 마셨고
택시타고 집에 편안히 잘 도착했다.
술이 주는 또하나의 위로는 편안한 잠이다.
적당히 마신 술 덕에 어젠 다른 날보다 한시간이나 일찍 잠들었다.
그리고 푹 잘 수 있었다.
다른 때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귀가하며 아들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바깥으로 작은아이를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평소보다 이른 귀가에 아이들은 반겨 맞았다.
집에서 나설 때
오늘 저녁준비를 안하고 나와서 집에 가 아이들 밥을 준비해주자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오늘은 밥을 사먹였다.
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굽다보니
힘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여긴 오지 말자
엄마가 좀 힘든다. 하고 말했다.
한달에 한번 정도는 가족들이 밥을 먹으러 나가곤 했는데
고기를 먹을 때는 남편이
알아서 굽고 알맞게 잘라주어서
나나 아이들은 먹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해보니 새삼 힘이 들었다.
오랜 세월 같이 살면서 길들여진게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전엔 아빠가 다 해줘서 먹기만 했는데 엄마가 하려니 힘든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은
큰아이가 표정 없이 말한다.
엄마 그럼 내가 해볼게
하고는 가위를 집어든다.
그리고는 해보니 이것도 쉽지 않네 하고 말했지만
그만두지 않고
녀석이 묵묵히 고기를 잘랐다.
속으로 생각했다.
녀석 제법 많이 자랐구나
늘 내눈엔 어리버리로만 보이는데
이젠 제법 자랐구나.
내일은 남편에게 다녀오려고 했다.
원래는 아들녀석의 시험이 끝난 주말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계속해서 일이 생겨 못다녀왔다.
내일도 5시나 되어야 겨우 시간이 나는데
너무 어두워지면 다녀오기 어려울 것 같다.
아마도 앙상한 겨울에나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있는 세상은 어떨까?
살아있는 자들의 몫은
잊어주는 것이지만
나는 아직 그의 영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죽음에 대해
젊은 넋에 대해
언제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없다.
그만큼 살다가려고
그렇게 휘청거리며 살았는지
정말로 밉다.
어쩌면 그가 책임감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두아이중 한명이라도 그에게 보내는 게 그를 위해서는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입장보다
내 아이들의 입장을 더 먼저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상처받으면
그걸 내가 다시 보는 게 겁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마음 편하자고
두아이를 다 내가 데려왔다.
아이들은 같이 있는 게 더 의지도 되고
도움도 되었을 것이라 여긴다.
밥을 먹고 근처 슈퍼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들어와 과일을 먹이고
잘 준비를 한다.
그를 생각하다가
가슴 한 켠이 아파온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수없이 신호를 보내지만
내 몸이 아주 정직하게
그만 생각하면 울고 있다.
그리고 그열병을 식히라고
차가운 물을 뿜어 내 놓는다.
이제 남편없이 아이들 데리고 나가 밥사먹이는 것쯤
상처도 아니고 어색한 일도 아닌데
문득문득 살아나는
기억들 때문에
그것이 족쇄가 되어
나를 가둔다.
장보며 카레를 사다가
멈칫 놀란다.
그와 아이들이 두세끼도 싫증 안내고 좋아하는 카레.
너무나 잘 먹는 바람에
나는 늘 한 끼 정도를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양보하곤 했다.
결혼해 산다는 것은
지리멸렬한 이같은
삶에 녹아 있는 것이다.
"내가 못찾아가도
서운해 하진 말아줘.
아이들과 함께 가려다보니
어렵네.
이 땅에서 아이들이 크는데
책임을 다 못하고 갔으니
하늘에서라도
아이들이
이쁘고 바르게 잘 크도록
기도는 해 줘야 해.
날 너무 믿지 말아 줘.
내가 날라리엄마인 것은 더 잘 알잖아.
그럼 내가
하늘에 든든한 백그라운드 하나 생겼다고
뻐기며 잘 살 수 있을 것 같거든..
잊은 건 아니야.
그래도 잊으며 살려고는 해.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거든."
그에게
중얼거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이젠
그를 생각하며
아프거나
울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내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내 뒤통수를 쳐댈 것 같은
감정의 끈들이 두렵다.
그러나
그게 살아남은 자의 몫인 걸
애써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날
그를 생각하다가
울지 않고
웃는 날도
미소짓는 날도 오겠지 낙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