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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버릇

 

우리아이들의 잠투정은 유난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었던 남편은

어느날 어쩌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유난하게 투정을 신경질적으로 하는  걸 보고

놀라서 내게 아이를 소아정신과에라도 데리고 가보라고 할 정도였다.

 

그때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곤 했다.

곧 괜찮아지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그리곤 거짓말처럼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보고 옆에 있던 남편은 신기해했었다.

 

큰아이 선재는 어릴 때 잠이 오면

엄지손가락을 빨며 다른 손으로는 엄마인 나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며 잠들곤 했다.

아이가 점점 크다보니 어느날은 머리카락을 심하게 잡아당기기도 해서

나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손에 대주며 그걸 만지며 자라고 했다.

엄마가 워낙 괴상하다보니

큰아이는 또 제머리카락에 길들어

그렇게 잠을 청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처럼 손가락을 빨지도 엄마를 귀찮게 하지도 않으며

혼자 뒹굴다가 잠들곤 했다.

하지만 이녀석은 꼭 손에 뭔가 하나씩 쥐고 잠든다.

그게 미니카일 때도 있고 가지고 놀던 레고블럭일 때도 있고

괴상한 물건의 모양일 때도 있지만 손에 쥐고 있어야 안정감이 오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잠들면

그물건들을 손에서 떼어내 찾기 쉬운 곳에 둔다.

 

잠에서 깨면 그걸 잊지 않고 꼭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의 질감을 좋아해서

토끼인형을 안고 자기도 하고

선물로 사준 강아지베개나 내친구가 선물로 준 고양이베개도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자기도 한다.

 

이녀석은 잠들기 전에 어찌나 울어대었는지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대는

밤이면 다른이들의 안면에 방해가 될까 하여

나는 아이를 업어 재우기를 다반사로 했다.

  

 

아이들을 지켜보니

큰아이보다는 작은아이에게서

내 어릴 적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어려서 나도 지나치게 잘 우는 아이였다.

뭐가 맘에 안드는지 늘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해댔다고 한다.

엄마말에 의하면 먹을 것을 줘도 기저귀를 갈아줘도

얼러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내 애칭은 깽깽이였다.

하도 울어대서 붙여진 애칭이었다.

 

막내였던 나를 식구들은 이름대신

깽깽아.. 하고 부르기를 더 즐겨했다.

사춘기가 될 때까지 그렇게 불린 것 같다.

나중엔 내가 싫어하니 오빠들이 그렇게 안부른 것 같다.

그래도 큰오빠는 나중까지 나를 꼬맹이라고 잘 불렀다.

 

우리 작은아이도 나처럼 맘에 안들면 울기를 잘 한다.

그래서 친정어머니는 어릴 때 너랑 똑같아.. 하고 말씀하시곤 한다.

 

엄마가 워낙 무덤덤하신 분이다보니

애정표현에 서툴러서 살갑고 예쁜 말을 별로 안하시곤 했다.

그보다는 이모가 날보면

이구 우리 똑똑이 아무개 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거나

당신딸처럼 엉덩이 토닥이시며 애정표현을 해주시곤 했다.

하지만 나도 그 이모처럼 내아이들에게 살갑게 굴질 못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아들아이들이다보니

부드러운 표현보다는 거친표현들을 더 많이 쓰고

딸키우는 엄마보다 목소리도 크고 시끄러운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머리맡에 옷을 예쁘게 개키고 잠을 자곤 해서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다.

칭찬받고자 한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고

본래 성격이 그때부터 좀 까다로웠다는 걸 나타내주는 일면인 것 같다.

 

여름옷을 입을 때

어릴 때의 나는 단추가 하나라도 열려있으면 못견디고 다 채우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작은아이가 꼭 나 같아서

오픈해서 입어도 되는 겉옷의 단추나 지퍼를 반드시 다 채워야 직성이 풀리고 만다.

그건 가르쳐서 하는 건 아닌데

어찌 그런걸 기질적으로 닮았는지

가끔 놀란다.

 

부모와의 스킨쉽이 부족했던 탓인지

나도 우리 작은아이처럼 이불에 집착이 심했다.

같은 방 쓰던 언니는 아무렇게나 이부자리도 안깔고 잠을 잘 잤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요가 접혀있거나 반듯하게 펴져 있지 않으면

잠을 잘 못잤다.

 

한여름에도 이불을 어깨까지 덮고 자야 마음이 놓이곤 했다.

이불을 돌돌 말고 자는 언니와 달리

움직임이 별로 없이 잤던 나는 나중엔 언니와 다른 이불을 덮고 자곤 했다.

땀이 홍건히 배어 보여서 이불을 좀 밀쳐주려면

더 강하게 끌어잡는 아이를 보며 어릴 때의 나를 본다.

 

한여름날

잠든 나를 보고

땀을 흘려서 이불을 좀 내려주려하면

작은아이처럼

나도 이불을 꼭 그러쥔 손을 놓지 않고

더 세게 이불을 끌어올리곤 한다고

엄마가 말씀해주시곤 했다.

 

이불이 주는 그 편안함 속에서 비로소 나는

편안한 잠을 잤던 모양이다.

 

그래서 솜이불의 묵신함을 정말로 좋아한다.

한겨울이 다가오면

솜이불이 주는 무게에 포근히 감싸여

단잠을 잔다.

 

그래서 겨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