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를 표현할 때면 나는 들꽃이 떠오른다.
목소리 크지 않고 웃는 미소가 잔잔해서 들꽃처럼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미소가 번지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친구이다.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건
고색창연한 어느 대학의 계단식 강의실에서였다.
같은대학 같은학과를 지원했다 둘다 낙방하고
또 같은대학 같은학과에서 만났다.
면접을 하는 날
대기실에서 K를 처음보았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녀의 출신여고를 힐끗 보았다.
그런 그녀를 3월의 내 대학 교정에서 다시 보았다.
중학교 때 같은반이던 중학동창을 내가 처음 지원했던 대학의 그 강의실에서 맞닥뜨렸을 때
그 동창과 내가 서로 주고받은 말은
동시에 너 왜 여기 왔니? 였다.. 둘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인지 같은학교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서글픈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는지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끼리 그런 말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그 중학동창도 나랑 같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이 친구는 재수를 해서 다음해
모여대에 들어갔다. 개인적인 연락은 없었지만 나중에 다른 친구를 통해서 들었다.
그 추웠던 1월의 강의실에서 만난 K는 나와 중학동창도 아니고 알던 사이도 아니었으나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그 강의실이 최초였다. 그리고 두달 후 K를 다시 다른 학교인 내 모교에서 보게 되었으나
상처처럼 나는 내가 그녀를 만난 강의실이나 대학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단 표현을 그녀가 나온 여고의 이름을 대며 말했더니 그녀도 안다는 둥 어떻게 그걸 아냐고 내게 묻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학교 다닐 때 유난히 친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하던 젊은새이웃이란 동아리에 내가 가입했던 것도 아니고
학번이나 이름도 나와는 좀 뚝떨어져서 세미나조가 편성될 때도 같은조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K가 같이 다니던 친구 중의 한명과 교분이 있어서 여럿이 같이 볼 때만 K를 보았다. 따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단둘이 어디를 쏘다닌 기억도 없다. 그래도 내 사진첩엔 K가 같이 여러번 등장하는데 다른 친구 A나 H와 함께 있다가 같이 어울린 경우였다.
그래도 우린 졸업무렵 졸업사진 찍고 같이 어울려 그날 입고 온 예쁜 옷이 아까울세라 학교를 돌며
같이 모여 사진도 여러방 찍었다.
졸업하고 오히려 친해진 경우가 K이다. 고등학교동창이 다니는 광고회사에 아르바이트자리가 들어왔을 때 당시 다른 일을 하던 나는 K에게 그일을 소개시켜주었고 나중에 K가 다니게 된 출판사에 내가 몇년씩
일을 하게 되기도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땐 점심시간에 같이 해바라기하러 다니고 퇴근 후 다른 친구와 연락해 같이 만나기도 했으며 친구들의 결혼식과 돌잔치에 같이 어울려다니곤 했다.
우리친구들 중 결혼이 늦었던 K는 나보다 몇년 후 아이를 낳았는데 그때 나는 내 첫아이의 유아용품을 그녀에게 몽땅 주기도 했다.. 그녀는 둘째 생기면 어쩌냐고 걱정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또 생각해보자며
이것저것 자잘한 용품들을 챙겨서 주었는데 그녀가 두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나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둘째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하자 내가 준 유아용품에 자기아이들 키운 것까지 보태서 주느라 그걸 다 싣고 오느라 뒤트렁크를 다채우고도 모자라 뒺자리의 좌석까지 가득 싣고 돌아왔다. 아기의 유모차며 보행기 흔들침대 그리고 블럭들과 딸랑이들.. 내가 주었던 우주복에 더 보태져 돌아온 아기옷과 내복들..그리고 천기저귀..분유케이스..그리고 내가 주었던 유아이유식조리기구..도 고스란히 돌아왔었다.
작은아이를 키우면서 K덕을 많이 보았다.
남편의 공장이 경기도 화성이라 그곳의 아파트로 이사한 것까지 알고 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다. K를 본지 4년이 넘었다. 내게 있던 친정전화번호도 부모님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셔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오늘 K의 꿈을 꾸었다.
남편의 일이 잘 된다면 전화를 할 텐데 오래 연락이 없어서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다.
간혹 좀 힘들면 K에게 나는 돈부탁도 하곤 했었다..
언니나 오빠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이라 쓸데없이 더 마음아파하게 할까봐 나는 힘들어도 그런 부탁을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간간이 큰오빠는 나를 지칭할 때마다 독하다고 했단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데 어떻게 남의 도움이나 신세를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그게 금전이든
위로든... 나도 인간인데 혼자사는 세상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필요하면 가족말고 친구에게 아주 가끔 부탁을 하곤 했다. 내가 돈을 벌지 않던 시절의 일이다.
남편의 월급만으로 생활해야했던...
지금 못갚아.. 좀 있다가 줘도 되면 빌려줘.. 하고 말하면 내게 수표몇장도 토달지 않고 빌려주었던 K가 어찌 지내는지 오늘아침 그녀의 꿈을 꾸고
걱정이 되었다. 내가 돈을 빌려서 썼던 몇안되는 친구 K가 보고 싶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그걸 그냥 같이 봐주는 게 친구인데
어쩌다 모두에게 연락을 두절하고 사는지
무사하기만을 기원한다.
K가 보고싶어지는 아침
그녀의 꿈을 꾸고 일어나
K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