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잘 하진 못하지만
듣거나 부르는 것은 좋아한다.
내가 이사해서 등록하고 다니기 시작한
동네 작은 교회의 목사님이
나만 보면 성가대를 하라고 성화이시다.
몸이 너무 피곤할 때는 목이 쉬어서 노래부를 엄두가 안났다.
목을 써서 일을 하는 일이라 그런지 목의 피로가 잘 느껴졌다.
아무 일도 안하고 편하게 예배에 다녀서 좋긴 했는데
일을 줄이고 나니 목이 좀 부드러워져서
성가대를 하겠다고 지나가는 말투로 이야기를 했는데
내 게으름을 아신 탓인지
몇달 전부터 내얼굴만 보면 꼭 성가대를 하라고 강권하셨다.
급기야
이번주엔 작정을 하시고 성가대관계자와 연결시켜서
나는 성가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둘째를 낳기 전까지 주일학교 교사를 했고 몸조리를 하고 난 이후에
다시 이어서 몇달간 교사를 더 했다.
그리고
청년시절엔
아침일찍부터 나가서 교사기도회부터 시작해서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어서 성가연습을 하고
어른들 예배인 본예배에 참석하고
끝나고 나면 다시 한 시간 정도 노래연습을 하고
점심먹고 나서 그날의 피로에 지쳐서 지내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는 어린이성가대를 했다.
늘 성가대석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아이가 크기를 기다려
주일학교 유치부에 가게 되면서부터 내 생활도
자유로워져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어디서든 튀지 않고 조용조용 지내고자 하지만
결국엔 전적이 발각돼
뭔가를 하고 있는 나를 만난다.
목소리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오늘 모처럼 예전에 같이 교회다니던
친구들이 만든 카페에 갔다가
거기 올려놓은 가스펠을 듣고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제자화훈련을 받고
평신도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던
젊은 날의 기도와 열정을 이젠 찾을 수 없다.
새벽을 깨우며 살리라던
아침의 묵상과 기도도 안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아주 느리게 기다리시고
참아주시며
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느낀다.
내가 회복할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요구하고 계시는
그분의 음성도 느껴진다.
남편과 내가 그렇게 잔소리 해가며 권해도 안하던
성가대에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 큰아이와
부족한 내가
목소리 높여 그분을 찬양하게 됨을 감사드린다.
열 두 지파 중에
레위지파만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에 참여하는 일이 그들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찬송가 중에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중하다.. "
이 찬양을 참 좋아한다."
주일학교 교사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 보람도 크지만
너무 힘들어서 피해가고 싶은 일이다. 내가 그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밖에 내가 받은 바를 갚을 길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성가대는 자기 위안을 많이 받는 직분이다.
교사도 아이들을 보며 더 많이 배우듯이
성가대는 성가를 부르며 내 안의 아팠던 부분들이
치유됨을 느낀다.
여건이 되는 한
예쁜 모습으로
그분을 찬양하고 싶다..
나의
하나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