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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상자

6월의 일기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선재가 6월 중순쯤 시험을 치룬다고 한다. 이른바 기말고사.

여태 무심하던 나도 아이에게 공부를 시킬 생각을 한다. 아들녀석 가방을 뒤져보니 학교에서 풀다만 학습지가 나온다. 12개 중에 두 개 맞고 다 틀렸다.

그걸 어제저녁에 씩씩거리고 아들과 맞대고 풀었다.
조근조근 알려주니 잘 푼다.
그런데 언제까지 내가 개인교사노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아들놈이 이해하고 풀어가야하는 게 시험이고 공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 모르는 것 한두 개 정도 내가 알려주는 것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믿어버리지도 무심히 지나치지도 못하고 무슨 때가 되면 신경만 곤두선다.

아들놈 풀어놓은 문제집 위로 고개를 디밀고 있다.
그래도 기말고사라는 건 긴장해야하는 거란 위기감 조성 외에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머니 아버지의 아무런 잔소리가 없어도 나는 학교 잘 다녔고 공부도 모자란단 소리 안들을 만큼 했는데
은근히 내 아이에게도 그걸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분수계산과 속력 이런 주제로 침튀며 떠들다가
잠자리에 들 것 같다.

그래서 둘째는 매일 동화책 한권도 못읽어주고 혼자 뒹굴다 잠든다.

나는 언제쯤 아들의 홀로서기에 대담하게 믿어줄지 모르겠다.

내 아이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놓지 못하는 끈.

사랑이란 이름으로 휘두르는 또 하나의 정신적 폭력은 아닐지 반성하며 적당한 거리 유지에 마음을 두어야겠다.

푸르고 건전한 청년으로 자라기까지 그저 바라봐주고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일 이외에 아무 스트레스도 주고 싶지 않건만 그건 꿈같은 소리일 뿐 관심이란 미명하에 여전히 나는 소리지르고 아들놈에게 기대를 할 것이다.

그 아이는 내 첫 생명이므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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