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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흐린 오후

집에 오면서 보니 땅이 젖어 있다.

가랑비라도 내린 모양이다.

 

늦은 저녁이라

김밥을 사들고 들어와 아이들에게 먹였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어야 사랑을 먹고 크는 것이라

여겼던 전업주부시절의 고루함은 모두 잊어버렸다.

 

주중엔 늘 스피드요리로 끼니를 때운다.

먹거리에 대한 노력없이

대충대충 스피드요리로 먹일 생각만 한다.

 

장난감과 책이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영양분이란 생각은

늘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책을 선별해

도서관에 가서 빌려주는 것도

또 도서목록을 참고해 책을 사주는 것도 게을리하게 되었다.

 

하나 다행인 것은

아들놈이 엄마 없이도 혼자 도서관에 가서

몇시간씩 보내다 온다는 일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내 카드로 아이의 책을 대출해 빌려다주곤 했다.

 

다소 귀찮아도 꼭 아이 손을 잡고 가서 책을 빌렸다.

성인서가에서 내 책을 고르는 동안 아들아이는 아동실에서 한시간 정도 기다릴 줄 알게 되는데 1년이 걸렸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난 일을 하게 됐는데

엄마가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지니

아들놈은 제 대출증을 가지고 가서 책을 빌려오기도 했다.

 

혼자인 아들아이가 응석을 부릴까봐 일부러 더 엄하게 대했다는 생각도 든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아이에게

열쇠를 쥐어주고 난 강의를 들으러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기도 했다. 그 당시 뭘 좀 배우러 다녔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남편에게 밥통 버튼 누르는 것부터

가르쳤듯이 아들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라면 끓이는 것과 전자레인지 사용하는 것부터 가르쳤다.

 

지금 같았으면 안그랬을 텐데 그땐 왜 그렇게 너그럽지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

 

하루종일 엄마없는 집을 지킬 아들이 안스러워

작년 겨울엔 하루종일 아이를 이리돌리고 저리돌리며

지내게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을 가르치느라 학원에 하루에 두시간씩 보냈고 영어학원에 보냈다.

 

집에 오면 6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올 겨울엔 어쩌다 보니 아무것도 안시켰다.

 

그래도 혼자서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오고

가서 몇시간씩 시간 보내다 온다.

 

착하고 고마운 아들이다.

 

내게 이처럼 과분한 아이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행복하다. 혼자 크던 아들아이에게 가장 큰 선물

동생을 나는 안겨 주었다.

 

두 아이가 잠든 모습을 바라본다.

 

세상 살아가는 동무로 친구로

서로 배려하면서

잘 커주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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