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책은 일년 전인가 집어들었다가
다 못읽고 반납한 기억이 있다.
헬렌 니어링은 젊은 시절 명상가로 알려진 크리슈무나르티의 연인이기도 했단다.
부모가 속해있는 신지학회를 통해서
크리슈무나르티를 알게 되긴 했어도 그녀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의 길을 가길 원했다. 그러나 나중에 스코트를 만나며 삶을 180도 전환하여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스코트 니어링의 사상에 대해서는 확실히 모르겠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나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지만 사회주의 사상에 깊이 매료돼 절제와 검약 등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너무 급진적인 사상
때문에 대학에서도 쫓겨나 교수직을 박탈당하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무보수로도 달려가 강연을 해 줄 정도로 가르치는 삶에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다른 동물에 대한 착취라며 채식주의자로 일관한 삶을 살아간다.
월든을 쓴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자연주의자로
살아가기를 자처한다.
손을 움직여 직접 필요한 것을 만들고 스스로 땅을 일구어 양식을 마련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독서와 글쓰는 데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헬렌은 스코트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이들부부는 그것을 즐긴다.
그리고 헬렌은 스코트와 같이 연구하는 일에 도움을 준다. 같이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고
정리를 해주고 한다. 정말로 조화로운 삶을 이룩한 부부이다.
농장에서 스스로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고 자급자족을 하며
살았던 그들 부부의 동지애와 같은 삶에 매료돼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음은 물론이다.
여름 휴가기간에 다시 읽으려고 다른 책을 빌렸다.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려본 게 몇 년만인지는 모르나
다 읽고 내 가슴에 서늘한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눈가를 훔쳐내었다.
100세가 되는 날
이제 죽을 날이 되었다고 모든 음식을 끊고 삼주만에
죽음을 맞은 스코트 니어링이 몹시 부럽긴 하지만
죽음 앞에서 얼마나 더 추한 모습을 보일지 못내 두려워서
눈물이 나왔다.
청소년기에 책을 읽으면
수첩 말미에 책이름과 저자와 읽은 날을 기록해 두곤 했다.
해가 지나면 수첩 끝에 쌓인 기록을 보고 혼자 뿌듯해 하던
유치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는 노트에 기록을 했다.
시집을 읽다가도 필사했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필사해두곤 했다. 몇번의 이사를 거쳐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지만 내 기억의 수첩에는 일부 남아있다.
"이상적인 삶은 어떤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그 이상이 관례에서 멀어질수록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신의 이상이 정신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며,정직하고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하면,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의식주마저 희생할 수 있다..."
너무 급진적인 이상 때문에 대학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책의 출판마저도 외면당했던 스코트의 표현이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굽히지 않는 대신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지는 삶을 살았다. 후에 헬렌을 만나 살게 되긴 했지만 자신과 떨어져 살았던 아들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훗날 마음아파한다.
"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있는 것을 얻게 해 주고, 사람의 상상력으로는 더 보태거나 더 낫게 할 수 없는 세 가지 습관이 있다. 그것은 일하는 습관, 건강을 관리하는 습관, 공부하는 습관이다. 당신이 만일 남자이고 이러한 습관을 가진 데다 같은 습관을 가진 여자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여기에서 천국에 있는 것이며,여자쪽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이것을 성취한 부부들에게 경의를 표하노니
그대들은 천국에 있는 것이랍니다.
스코트가 시카고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강의할 때 칠판에 적은 메모이다.
지배계층의 프로젝트
착취
기술 결과
1.물건축적 1.지배계급에 종속
2.마약제조 2.망각
3.속임수 3.타락과 붕괴
자유론자의 反프로젝트
해방
기술 결과
1.검약 1.자립
2.금욕 주의 2.에너지보존
3.목표설정 3.성장
그의 전생애를 생각해볼 때 그들 부부는 정말로 자유론자의 프로젝트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누군가 물으면 늙어서도 아스팔트할머니로 늙어갈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내게 도시는 마약과도 같고 너무 오래 살아버려서 도시를 떠나 살 순 없을 것 같다고...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
버몬트농장과 메인에서
니어링부부가 이룩한 삶은 농촌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모델이 될 수 있다.
덜 소비하고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면
이런 삶도 가능할 것이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안락사에 대한 의견에서
인터뷰에 응한 어느 외국인이 답하기를
태어날 때는 내가 선택해 태어나지 않았지만
죽을 때는 선택해서 죽고 싶다고 했다.
자살의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병들어 고통스럽게 예정되어 있는 죽음을 향해 가느니
자신의 정신이 혼미하지 않을 때 죽음을 맞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요즘도 서점에 가보면 내가 몇년 전 읽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스테디로 팔리고 있는 모양인지 서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한 스코트 니어링을 생각하며
탐욕과 욕심으로 순간순간 내 안에 차오르는 욕망들에 대해
몹시도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