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6주기가 되는 날이다.
친정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했다.
외아들이신 아버지가 제사를 지내실 때면
시중들고 있는 나를 데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제사를 마칠 때쯤에 물기를 올렸다 내리는데
겁많은 나더러 늘 그물을 마시라고 주시곤 했다.
오빠들보다
오징어오리는 것도 더 잘하는지라 한동안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가 그걸 하곤 했다.
이젠 맘놓고 운전대를 맡겨도 될 만큼 올케의 운전실력이 늘었는지
작은오빠는 제사상을 물리고 앉아 음복을 했다.
오빠들과 같이 앉아 나도 정종 서너 잔을 마셨다.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당신 막내딸은 비서실장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시며
나를 여기저기 잘 데리고 다니신 아버지...
학교 들어가기 훨씬 전
술 취한 아버지와 늦은 밤 택시타고 같이 돌아온 기억이 아련하다.
고3때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며
골목 어귀에 늘 나와 서성이던 아버지.
장마철이면 아직도 아버지 팔베개를 하고 자던 낮잠이 기억나고
겨울이면 아버지 좋아하시던 귤이 생각나고
보폭이 큰 어르신들을 간혹 만나면 우리 아버지처럼 성미급하신 분이 또 있구나 싶어 뒤를 돌아다본다.
내가 써드린 장문의 편지를 양복 안주머니에 며칠씩이고
끼고 다니셨던 아버지..
학교 알뜰시장에서 고교생 때 천 원주고 사다드린 폴리에스테르 넥타이도
딸이 사다준 것이라고 한동안 그것만 매고 다니신 아버지.
지금도 나는 아버지의 눈을 매일 바라본다.
우리 둘째 아들의 눈이 아버지처럼 크고 쌍커풀이 크게 져서
외할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큰아이와 달리 나를 많이 닮은 둘째를 보고 사람들은
아무리 보아도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별로 예쁘지 않은 엄마에게서 너무나 예쁜 아들이 나왔다는 사설을
꼭 붙인다. 그러나
거기에 젊은 시절 아주 멋진 모습의 내 아버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둘째아이를 키우며 아버지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어느날 내가 세상 떠나고 없을 때
내 아이들도 내가 아버지를 추억하듯이
그렇게 나를 기억해주고 그리워할까 생각해보지만
선뜻 자신이 없다.
아마도
내 잔소리와 게으름만 기억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렵다.
하지만 나는 내 길을 갈 뿐이다.
내가 걸어간 길과 삶이 부끄럽지 않도록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내고 싶다.
그게 돈을 버는 것이든
사랑을 주는 것이든...
결과보다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며...